윤봉길
올해는 윤봉길 의사 의거 80주년 되는 해이다. 윤봉길 의사는 중국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열린
일본 천황의 생일기념식에참가하여 폭탄을 투척한 사건으로 한국 독립운동사에 길이 남게 되었다.
의거는 비록 천황을 암살하는데는 실패 하였지만 그자리에 참석 하였던 일본군 상하이 파견대장
등 고급 장교 두명이 죽고 5명에게 중상을 입히는데 성공했다. 윤봉길의 의거 이후 중국 주석 장개석
은 "중국 100만 군대가 해내지 못한 일을 조선의 한 청년이 해냈다" 라고 말하며' 임시정부 지원에
대한 이전의 미온한 태도에서 벗어나 임시정부를 인정하고 독립군의 활동을 적극 후원 하였다고 한다.
이 모든것을 이루고 일제에 의해 순국 하였을 때' 윤봉길 의사의 나이는 불과 24세였다.
두 아들아, 조선을 위해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나라를 위해 희생하겠다는 윤봉길 의사의 진정과 함께, 평소 달필로 알려진 의사의 친필 글씨 또한
인상깊다. 거사 이틀전, 의거 장소인 홍커우 공원으로 사전 답사를 다녀온 뒤 김구선생의 제안으로
유서를 작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죽음의 목전에서도 나라를 위한 염려를 잊지않았던 윤봉길의사의
유서를 통해 나라 사랑의 이미를 되세겨 보았으면 한다.
윤봉길 의사가 의거에 앞서 유언으로 자식들에게 남긴 편지는 독립 운동가로서의 의지 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면모를 찾아볼 수 있게 한다. 편지는 피가 있고 뼈가있다면 너희 또한 조국의 투사가 되라는
당부로 시작 된다. 자신이 걸어온 독립운동가의 길이 쉽지 않은 길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윤봉길 의사는
자식들에게도 조국을 위한 삶을 살 것을 권유 하고 있다. 태극의 깃발을 들어 올린 이후에 무던에 붓는
술은 아버지이기에 앞서 선배 독립 운동가에게 바치는 존경의 술일것이다.
이처럼 윤봉길 의사는 마지막 순간까지 나라를 생각하는 애국지사의 면모를 잃지 않는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아버지 없이 살아가야할 어린자식들에게 비록 너희는 아버지가 없지만 어머니가
있으니 맹자, 나폴레옹 같은 이가 되어 달라던 윤봉길 의사의 소망은 윤의사의 자식 뿐만아니라
우리 모두가 가지고 가야할 숙제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사는 모습은 어떻한가? 나라를 위한 투사는커녕
나만을 위해 살고, 아버지가 살아계서도 나의 욕구를 충족 시켜주지 못한다고 생각되면 부끄럽게 여기며
가장 가까워야 할 부모와 단절된 삶을 살고 있지는 않는지 ........
윤봉길 어릴적 우상이었고 가장 닮고 싶었던 인물 중 한분이었다.
님의 삶이 비록 짧으나 100년을 산 추한 인생과 어찌 바꿀 수 있으랴.
윤봉길 의사뿐 아니라 수없이 많은 분들의 삶이 하나하나 가슴을 헤집는다.
약간 뒤늦은 감이 있으나 아직 6월이라는 것에 안도하며 윤의사의 글을 올린다.
감사합니다.
공감하시는분은 함께 해 주시는 마음으로 꾹 하는 수고를 끼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