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트디브아르. 우하이
코트디브아르 아프리카의 어려운 나라중 한곳, 그곳에서 동아리 '우하이'를 만들어 활동하는 우리
학생들 .코트디브아르가 어던 곳인지도 모르고 달려가서 생판 알지 못하던 사람들과 만나 웃고 울며
1년을 지내고 온 그들이 다시 코트디브아르 를 생각하며 '우하이' 활동중에 있었던 기억을 꺼내 놓았다.
우하이 활동에 대해 들어본다.
대학생 의료봉사 동아리 '우하이'(Uhai, 스와힐리어로 '생명' 이라는 뜻.) 에서 활동하고 있는
나는 올 여름 회원들과 함께 코트디브아르에 다녀 왔다. 아직은 아무런 기술도 없는 평범하고
유약한 대학생이지만 작은 도움이 되고 싶어 참여한 아프리카 봉사였다. 의료진들 옆에서 도우미
역할을 할 뿐이었지만 환자들이 고통 속에서 사는 모습을 보며 나의 살아온 길과 나의 살아갈 길
을 동시에 성찰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7월 26일부터 8월 9일까지 2주간 굳뉴스의료봉사회와
함께한 아프리카 의료봉사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더 빨리 뛰고 또 뛰었다.*
7월 26일 인천 공항을 출발해 두바이를 거쳐 약 20시간의 긴 비행을 마치고 코트디브아르 수도
아비장에 도착했다. 다음날 아침 6시에 기상해 간단히 아침을 먹고 의료봉사장에 갔더니 이른 아
침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의료봉사팀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대학생 봉사단이 할일은 접수부터
진료, 처방 등의 과정이 원할하게 진행될 수 있게 안내해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치료를 받고 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그리 쉽지 않았다. 불어, 영어, 한국어가 3중으로 통역되어
야 하는데 영어가 가능한 현지인의 봉사자의 수가 부족해 의사소통의 어려움이 많았다. 우리는 최선
을 다하고 있었지만 진료실 안의 환자 좌석이 비어 있는것을 볼때면 애가탔다.
만만치 않은 비용을 들여 여기까지 왔는데, 아무런 도움이 못된다고 생각하니, 나의 무능력 함에 허탈
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하루 이틀이 지나자 점점 전체적인 흐름이 원할해지며 첫날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왔고, 점점 빠른 진료가 가능해 졌다. 환자들을 의사들과 빨리 만나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우리는 더발리 뛰고 또 뛰었다.
*여기서는 치료가 않되요.*
아비장에서 의료 봉사는 내과, 치과, 한방과, 안과 등을 진료했는데, 하루평균 1000여명의 화자들이
왔다. 가장 많은 환자가 몰린곳은 다름아닌 안과였다. 특히 눈동자가 누런 사람들이 많았다.
백내장과 녹내장에 걸린 사람도 많이 왔는데, 의료봉사단의 시설로는 치료가 어려워 그냥 돌려보내야
하는 환자들이많았다.
하루는 동공이 허옇게 된 아기를 안고 한 아주머니가 찾아 왔다. 나는 너무 놀라서 대기자 들을 뒤로
하고 그 분을 먼저 접수처로 보냈다. 다른 환자들도 아기가 안쓰러웠는지 이해해 주셨다. 안과 간호사
선생님이, "이것은 녹내장인데 이곳에서는 치료가 않되요." 하며 매우 안쓰러워 하셨다. 결국 그날
아기와 아주머니는 그냥 집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그 이후로도 눈의 질병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
들이 많이 왔다. 안과에 너무 많은 환자가 왔고, 더 이상의 치료가 않되서 나는 한마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눈을 가리키며 "피니(끝났어요)" 라고.....말이다......
*눈에 고통이 서려 있는데 아프지 않다는 아이*
아비장에서 첫 주를 보내고 2주차는 아비장에서 8시간 떨어진 부아케로 장소를 옮겼다. 부아케는 문명의
손길이 많이 닿지 않은 곳이었다. 축구가 인기가 있어서인지 그곳 오지에도 축구 골대가 있었다.
숲속을 지나 학교 교실에 치료실을 만들었다. 그곳에선ㄴ 코트디브아르에서 발병율이 높다는 풍토병인
부룰리 궤양 환자를 치료하는것이 목표였다. 접수된 30몀만 치료할 예정이었으나 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끊임없이 몰려 왔다. 우리는 상처를 소독하는 드레싱을 도왔다.
내가 치료실에서 처음본 부룰리 궤양* 환자는 남자아이였다. 언제 어디서 감았는지 모를 붕대는 이미 까
매지고 너덜너덜 풀려 있었다. 그것을 식염수로 불리며 하나하나 풀었는데 썩은 냄세가 확 났다.
생애 처음 맡아본 심각한 냄세였다. 그리고 이상한 큰 나뭇잎이 붙어 있었다. 오래되어 살과 함께 썪어 있
었고 여기저기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엄마가 붙여 줬다는 나뭇잎은 현지의 민간요법이었던 것이다.
원장님께 진료를 받고 치료를 시작했다. 빨간 베타딘을 멸균된 솜으로 적셔서 상처 부위를 톡톡쳤다.
"싸바?(괺찮니?) 싸바(괞찮아요.)" 아이는 10살정도 되어 보였는데, 아프다는 소리를 한번도 하지 않았다.
가끔 눈을 찔끔 하기도 했지만 곧 괞찮다며 웃음 지었다. 눈에는 고통이 서려 있는데 아프지 않다고 하는걸
보니 더욱 안쓰러웠다. 아직 어린아이인데 고토에 너무 일찍 익숙해진 것 같아 그것이 더 내마음을 아프게
했다.
*꿈을 향해 갈 수 있는 동아리를 향해*
올해 2월 봉사동아리 우하이를 만들어 동아리를 이끌게 되었고, 올 여름 처음으로 의료봉사를 위해 코트디브아르에 갔다.
우하이를 만들기 전만 해도 아프리카 의료봉사는 꿈일 뿐이었다. 하지만 꿈을 생각하고 찾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정말 말로 설명하기 벅찬 좋은 경험을 해서 행복했다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다. 그러한 경험을 우하이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더 좋았다. 또한 친구들의 속을 더 깊게 볼 수 있었던 것도 좋았다. 앞으로도 더 깊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같다
는 확신이 들었다. 우하이가 꿈을 향해 함께 갈 수 있는 뜻이 비슷한 사람들의 모임이 되어 진지하고 목표가 있는 동아리가
될 수 있을것 같다. 겉으로는 천방지축 장난스러운 우리지만 함께 모여 진지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모임이 되기를 바래본다.
**글쓴이 강지연**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부 2학년 재학중이며 대학생연합봉사동아리 우하이의 고려대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올 여름 코트디브아르 의료봉사에 참여 했으며, 앞으로도 우하이 회원들과 의미있는 일을 지속적으로 하려고 한다.
**사진가 송장선**
평소 의료 봉사에 관심있던 직장인으로 여름 휴가를 이용해 굿뉴스 의료 봉사단과 함께 가나, 코트디브아르,
의료 봉사에 동행하여 생생한 의료 현장을 사진에 담았다.
*이기사는 대학생연합봉사 동아리 우하이Uhai 코트디브아르에 가다. 안녕이라고 인사하는 아이들이 내 마음을
더 아프게 합니다. 의 내용 일부입니다.
더 많은 내용은 잡지를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진료중인 사진은 본문의 이해를 위해 퍼온 것입니다.***
공감하시는분은 마음을 표해 주기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