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ka2 2012. 9. 24. 19:06

 성우 서혜정 얼머전만해도 나의 기억에는 없었던인물이다.

그러나 알면 알수록 서혜정이라는 여인 아니 성우는 매력있는 재능을 갖고 있었다.

 

 

" 남자? 여자 몰라요. 여자도 남자 몰라요. 사소한것 하나부터 너무나 다른 남녀, 남녀 탐구생활 ㅇㅇㅇ편"

어떤가,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옆에서 대사를 읊어주는듯한 착각이 들지 않는지? 스마트폰의 기계음처럼

무미건조 하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빠져드는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올해로 성우생활 30년을 맞는

성우 서혜정이다.

늘 영화, 드라마, 애니매이션에서 캐릭터의 뒤에 숨은 조연이지만 그 캐릭터에게 숨결을 불어 넣는 직업인

성우, 캐릭터와동화되는 감수성과 몰입, 창의력을 자신의 최고의 경쟁력으로 꼽는 '천의 목소리' 서혜정의

이야기를 듣고자 여의도 KBS 맞은편에 있는 그의 사무실을 찾았다.

 

 

서혜정, 그녀를 키운 가난

서혜정의 어린 시절은 유복했다.10살때 까지는, 아버지가 미군 부대에서 근무한 덕에 먹을것, 입을것, 갖고싶은것무엇하나

부족함 없는 풍족한 시간을 보냈다. 친구들에게 그녀는 부러움의 대상 이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돈을 벌어 오겠다는 약속만을 남기고집을 떠나면서 가정형편은 차츰 기울기 시작했다. 급기야 오랬동안

살던 정든집을 떠나 목동 판자촌으로 이사를 가야 했다. 집집마다, 우는소리, 싸우는소리,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리는 곳이었

다. 밤이면 소리는 더욱 커졌고, 그녀는 그때부터 이웃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며 그 집에 무슨일이 있는지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렸다. 지금 생각하면 힘든 시절이었을텐데, 서혜정은 그 시절이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고 했다.

"제 책인 <속상해 하지 마세요>에 어린 시절 이야기를 다 담아 놓았어요. 그런데 그 책을 읽은 분들마다 다들 보면서 울었다고

하시더군요. 하지만 저는 그냥 '살다보면 이런때도 있는것구나' 싶었어요. 언젠가 철거반 사람들이 몰려와서 저희 집을 헐어

버린적이 있었어요. 한 가족의 눈물, 웃음, 밥냄새, 희망 그 모든 게 담긴 게 집이잖아요? 그때도 저는 슬프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중학교 때는 학교 매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비를 면제 받았다. 서혜정의 가난한 형편을 인 선생님의 배려 였다. 아침

6시면 학교 매점으로 달려가 물건들을 받아 정리했고, 아침시간, 점심시간, 쉬는시간에는 친구들에게 빵과 음료수를 팔았다.

어린나이에 자존심이 상할 법도 한 일이지만 그녀는 스스로 학비를 댄다는 생각에 뿌듯 했다고,

그런 그녀도 눈물을 흘린적이 딱 한 번 있었다. 날씨가 영하 10도로 떨어지는 추운겨울 이었다. 그날도 그녀는 어깁없이 새벽

부터 매점으로 향했고, 문을 열기 위해 자물통에 열쇠를 꽂았다. 하지만 열쇠가 돌아가지 않았다. 날씨가 추워 자물통이 얼어

버린 탓이다. 꽁꽁 얼어붙은 자물통을 돌리기 위해 그녀는 호호 입김을 불었다. 그런데 자물통에 입술이 딱 붙어 버렸다.

자물통에 붙어버린 입술을 떼기 위해 안간힘을 써 보았지만 입술은 떨어지지 않았다. 14살 소녀의 눈에서 그동안 참아왔던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 한것은 그때였다.

왜 나만 이렇게 살아야 하지? 다른 친구들은 아직 다 집에서 자고 있을텐데, 매점 일 하느라 좋아하는 공부 할 시간도 없고,

성적은 계속 떨어지고, 난 이제 겨우 중학생인데, 이게 뭐야 나도 다른 애들처럼 살고 싶어!"

얼마나 울었을까, 어느틈에 거짓말처럼 입술이 자물통에서 떨어져 있었다. 눈물이 떨어져 얼어붙은 입술을 녹인 것이었다.

어쩌면 그녀의 말대로 하나님이 그녀의 기도를 듣고 입술을 떼어 주셨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신이내린(?) 성우' 에서 진짜 성우로.

지독한 가난 속에서 남몰래 눈물을 훔치던 서혜정이었지만, 그런 그녀에게도 오랫동안 품어온 꿈이 있었다. 바로 성우가 되는 것이었다.

어머니를 닮아 고운 목소리를 타고 난데다 매사에 '우리는 양반집안'을 강조하는 어머니의 웃지못할 성화덕에 그녀는 어릴때부터

'천천히 또박 또박 말하라'는 어머니의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 덕에 초등학교 때부터 국어책 읽기는 온전히 그녀의 몫이었다. 아이들

에게 책을 읽힐 때면 선생님은 대게 한 쪽 정도 분량을 읽게 했지만 그녀 차례는 달랐다. 선생님은 그녀가 읽는것을 결코 끊는 법이

없었다. 책 읽기를 마치면 또랑또랑한 그녀의 목소리에 감탄한 친구들은 박수를 보내 주었고, 선생님은 흐믓한 미소를 보냈다.

친구들은 관객 선생님은 PD였던 셈이다. 그녀가 자신을 '신이내린성우'라고 말하며 웃는 이유다.

신이내린 성우가 진짜 성우의 길로 접어든 것은 고등학교 2학년때 였다. 서울예술전문대학(지금의  서울 예술대학) 에서 주최한

전국 방송경연대회에 학교 방송반 친구들과 출품한 작품이 대상과 작품상을 차지한 것이다. 그녀는 개인상도 함께 받았는데,

개인상 수상자에게는 서울예전에 특기생으로 입학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그렇게 그녀는 서울예전 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KBS 가 주최한 17기 성우 공개모집에 합격하면서 본격적으로 성우의 길을 걷게 된다.

그렇게 시작한 성우 생활이 어느덧 올해로 30년째다.

 

 

내가 죽어야 작품이 산다.

외화나 애니메이션을 주관하는 PD들 사이에 서혜정은 '행운의 마스코트'로 통한다. 어떤 작품이든 서혜정을 캐스팅하면

소위 '대박'이 난다는 것, 그러고 보니 그녀의 출연작은 하나같이 히트작의 대열에 올랐다.<X파일> 은 물론이거니와

<이누야사>, <세일러문>, <위기의 주부들>,<포켓 몬스터>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어떻게 된 일일까.

"저는 참 행운아 인것 같아요. 이상하게 제가 그렇게 많은 작품에 참여한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제가 굉장히 많은 작품에

참여 한 줄 알아요. 참여한 작품마다 흥행에 성공 했기 때문 일거예요. 물론 그 작품 자체가 인기있는 작품들이기도 했지만

저는 어던 배역을 맡으면 그 배역에만 쏙 들어갑니다. 집중 하는거죠, 전 한번도 '내가 이 배역을 잘해서 튀어 가지고 스타

가 되어 볼까?' 하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어요."

작품에 임할 때마다 그녀는 '나'를 비우고 작품 전체를, 그리고 동료성우들과 조화를 생각 했다고 했다. 매순간 '이 장면

에서는 내가 어던 색깔로, 어떤 비중으로 연기해야 할까?'만을 꾸준히 고민했고, 그 꾸준함은 작품의 성공으로 이어 졌다.

물론 처음에는 그런 마음의 세계를 알지 못했다. 성경 녹음작업에 참여하게된 계기로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면서 성경의

어느 한구절을 통해 '성우가 죽어야 작품이 산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닳았다고.

"성경에 '한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알 그대로 있고, 주그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라는 말씀이 나와요.

밀알이 썩어야 생명이 나오는 것처럼, 내가 죽어서 썩어야 되더라고요. 그런데 내가 살아서 나 혼자 잘 나려고 나를 챙기고

위하면 절대 부가가치가 생기지 않아요."

 

 

중략

 

지금까지 많은 작품을 히트시키면서 대중의 관심 가운데 섰지만, 그녀는 결코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고 있다.

특히 케이블TV나 인터넷 보급으로 더빙이 사라지고 있는 주세가 안타깝다고 한다. 더빙은 단순한 우리말 '녹음'이 아닌

우리 정서를 실어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우들의 말은 사람들의 언어생활을 이끌기 때문에, 청소년들 사이에 비속어가

자주 쓰이는 것을 볼 때면 책임감을 느낀다고.

여느 사람이라면 하나만 겪어도 좌절했을 아픔을 수도 없이 겪은이가 서혜정이다. 오래전 이혼의 아픔을 겪기도 했고,

몇 해전 오디오북 사업이 실패로 끝나면서 부채도 남아 있는 상태다.그럼에도 그녀는 오히려자기것을 챙기기보다 나누는

일에 열심이다. 영화를 보지 못하는 시각 장애인을 위해 영화 장면을 해설해 주는 재능기부 활동을 벌이는 한편, 자서전

<속상해 하지 마세요>의 인세 전부를 아프리카 우물 파기에 기부 했다. 목소리 만큼 마음도 고운 그녀가 지금처럼 밝은

모습으로 우리곁에 계속 남아 있어 주기를 기대해 본다.

 

 

 

성우 서혜정 1982년 KBS 성우 공채 17기로 데뷔했다. 대표작<X파일>로 KBS 외화 더빙상을 수상했고, 최근 종영한

<남녀탐구생화>로 대중들의 많은 인기와 사랑을 받았다.

 

 

*이 기사는 '<남녀탐구생활> 성우 서혜정, 창의력과 감수성이 나의 경쟁력이다' 인터뷰으 일부입니다.

더 많은 내용은 잡지를 참고 하기기 바랍니다.

 

 

 

 

이번호 부터는 작은 이야기 진솔하고 마음을 이끄는 이야기를 조금씩 연재 해볼까 합니다.

 

서울 어느 동네

일용직  청소부와 그의 아들,

 

**서론**

 

사람이 마음을 낮추고 살면 기쁘고 감사한 상ㅁ이 가능 합니다. 예를 들어, 내가 100쯤 되는 사람인데,

스스로 200이나 300으로 알고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늘 나를 괄시 하거나 무시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나를 대하는 사람들의 행동이 항상 불만족 스헙게 보입니다.

반데로 나는 100쯤 되는 사람인데, 스스로 40이나 30밖에 안 된다고 생각하면 나를 잘 대해주는 주변사람

들의 행동이 항상 송구스럽고 고맙습니다.

한번 마음을 낯추면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이, 주위 사람들의 마음이 내게로 흘러 들어오기 때문에

늘 감사한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반대로 마음이 높으면 자신의 평가에 짜증과 불만이 생기고 결국엔 주위 사람들도 그런 그를 점점

싫어 하게 됩니다. 주위 사람이야 매일 만나지 않으니까 괞찮지만, 같이 사는 가족이 그렇다면 갈등은 더

심해 집니다. 남편이 마음이 높으면 아내가 불행하게 살아야 하고 아내가 마음이 높으면 남편이 불행하게

살아야 합니다.

내가 마음이 높으면 내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에 마음을 높여서는 않됩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은 본성 자체가 자꾸 높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본문...

지금은 난방장치로 대부분 가스나 기름 보일러를 사용하지만 예전에는 연탄을 때서 겨울에

난방을 했습니다. 그래서 한 집에서 하루에 적으면 두세 장  많으면 열 장 이상씩 연탄재가 나왔습니다.

연탄재가 집집마다 문 앞에 쌓이면 새벽에 청소부들이 큰 수레에 연탄재를 담아 치우는 일을 했습니다.

서울의 어떤 동네들은 경사가 심해서 청소부들 고생이 아주 심했습니다.

더우기 겨울에 눈이 오면 미끄러워서 다치기 십상이었습니다.

 

경사가 심한 서울 어느동네에 김철민이라는  청소부가 있었습니다. 워낙 가난해 방 한 칸에서

부부와 아이 셋이 살았습니다. 연탄재를 다 치우고 돌아오면 너무 고되어서 끙끙 앓았습니다.

하루는 초등학교 6학년 큰아들이 보니까, 아버지가 밤새 앓는 소리를 하시더니 새벽이 되자

또 일하러 나가려고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옆에서 어머니가 걱정스런 마음으로 말했습니다.

"여보 그몸을 가지고 나갔다가 더 심해지면 어떻하려고 그래요? 하루 쉬면 몸이 좋아질테니

오늘은 그냥 하루 쉬세요."

"당신이 몰라서 그래, 내가 하루만 안 나가면 내 담당 구역에 대문마다 연탄재가 쌓여, 그걸

동사무소 직원이 지나가다 보면, 내가 정식 직원도 아니고 임시 직원인데 성실하게 일하지 않는다고

바로 쫓아낼 거야, 그러면 우리는 무얼 먹고 살아? 일하러 나가야 해,"

웬만 하면 하루 쉬고 싶지만, 아버지는 주섬 주섬 옷을 입고 장갑을 끼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아버지의 그런 모습이 아들의 눈에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아들은 아버지가 가족을 위해 얼마나 어렵게 일 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아이들과

생각하는것이 달랐습니다. 공책도 아껴쓰고, 연필도 조심해서 쓰고, 학교에서  돈이 드는일은

부모님께 물어 보지도 않고 무조건 안한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올리겠습니다.***

 

 

 

 

 

                                                              

 

많은 격려 부탁드립니다.

 

지난주엔 일정이 너무 많아서 댓글은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간신히 답글만 드렸는데 여간 죄송합니다.

양해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