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아람
런던올림픽 펜싱 여자 에페준결승 에서 '멈춰버린 1초' 오심으로 결승전 진출에 실패해 국민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지만, 극적으로 에페 단체전에서 금보다 값진 은을 안겨준 신아람 선수
제 17회 김창환배 전국남녀 펜싱 선수권대회와 2012 펜싱 국가대표 선발전이 함께 열리고 있는강원도 양구
문화체육관에서 그녀를 만났다. 가벼운 운동복 차림으로 나온 그녀는 TV 화면으로만 보던, 펜싱복을 입은 당찬
펜싱선수 신아람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남다른 시련을 극복한 올림픽 메달리스트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
로 학생처럼 앳되고 차분한 분위기 였다.
오늘은 펜싱선수 신아람 이면의 '인간 신아람'을 만나보고 싶었다.
4년보다 길었던 1초,
먼저 '멈춰버린 1초'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하고 넘어갈 수는 없을것 같아요. 당시의 심정이 어떻 했나요?
준결승 전에서 마지막 1초를 남기고 상대 선수의 두번의 공격이 끝낫을때 저의 승리를 확신 했어요. 왜냐 하면 1초라는 찰라
에도 운이 나쁘면 한번정도는 찔릴 수 있지만, 두번이나 공격을 막아냈기 때문에 시간이 다 갔다는 생각에 승리를 확신 했어요.
"세번째는 심판이 '알레Allez 경기시작)' 하자마자 끝날것이다." 라고 승리를 확신 했는데, 세 번째에도 경기 종료가 않되고 다시
1초가 주어졌을 때부터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어요.얼마나 시간이 흘러야 끝날지도 모르고, 제가 버텨야 할지 아니면 그냥 시간
을 써야하는지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죠.
'그때 결승전에 올라갔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없는지요?
시간이 지난 지금도 문득문득 '내가 결승에 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아무래도 조금 힘들죠. 제가 욕심이 과한것
일 수 도 있는데, 항상 저는 금메달을 목표로 시합에 임하거든요. 런던 올림픽도 마찬가지 였던것 같아요. 올림픽 준비과정에서
코치 선생님들과 주위에서 알게 모르게 저에게 기대를 많이 하셨어요. 스스로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도 있었
어요. 또 결승전에 진출한 우크라이나 선수가 저랑 좀 맞아서, 준결승 시합전에 그 선수가 결승에 진출한 것을 알고는, '아 이고비만
넘기고 결승에 가면 정말 금메달을 목에 걸 수 도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은 있었죠.
경기 후 ESPN이 국제 펜싱연맹을 비난하기도 하고, <US TODAY> 에서도 신아람 선수를 '올림픽에서 가장 슬픈
선수'라고 일컷는 등 해외언론도 신 선수를 응원 했는데, 현지 반응은 어땠나요.
경기후 평소 친하지 않던 다른 나라선수들까지 저를 위로하고 제가 이긴게 맞다고 다들 인정하는 분위기 였어요. 이후 심판들도
우리 선수들의 시합에 신경을 많이 쓰는게 느껴졌고 굉장히 호의적으로 변했어요. 그 다음날 부터 펜싱 종목별로 우리 선수들의
메달이 계속 나오면서, '에페에서만 메달을 목에 못 걸고 가는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 저희들 끼리도 최선을 다해서 그일을
잊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혹 그 후로도 메달에 대한 집착은 없었는지요.?
그 후 공동 은메달, 특별상등 제 이름으로 기사가 나오는것 자체가 큰 부담이 되었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어요. 매일매일 관련
기사가 나오니까 제가 좀 흔들렸던 것 같아요. 공동 메달에 대해서는 기대하지도 않았고 신경을 쓰지 않으려 했는데, 마지막에
사실과 달리 제가 공동 메달을 무리하게 요구 했다가 거부되었다는 기사가 나와서 좀 화가 났었어요. '올림픽메달은 남의 힘으로
받을 수 없구나, 그냥 내 스스로 따야 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오기도 많이 생겼고요, 제가 런던올림픽 4강에 개인전 에서들어간게
운이 아니라는 거슬 보여 주고 싶었고 그래서 단체전에는 더 열심히 임했던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그 사건 때문에 이번 런던 올림픽에서 가장 유명한 선수 가 되었다고 볼 수 도 있습니다.그래서
국민들이 신 선수를 더 안타까워 했고 국민들의 기억에도 어떤 선수보다도 더 강하게 남게 되었는데요. 귀국
후 선수들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에 대해 어떠했어요?
일단 알아봐 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신기 했고요, 어떤 분은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그렇게 많은 관심을 받는 경우가 별로 없다'
하시더라고요. 제가 좀 특이하게 생긴 탓인지 정말 잘 알아 보시더라고요. 그래서 많이 신기했어요. 한편으론 저는 많은 사람들
을 구경하며 다니는것을 좋아 하는데, 이제는 길에서 사람들과 눈을 못 마주치겠더라고요, 길을 걸을때 허공을 쳐다보고 다니느라
많이 불편 한것같아요.(웃음)
유도의 조준호 선수와 함께 국민 금메달도 수상 하셨는데요.
국민 금메달도 국민들의 마음을 얻었기 때문에 받은 거 라고 생각하니 제게 더 값지고 소중한것 같아요. 제가 이런 마음을 받아도
되는지 처음에는 많이 부담 스러웠는데, 어쨋든 국민들의 그 마음은 아마 평생 제 마음에 남아 있지 않을까요?
오심을 딛고 획득한 은메달, 세계를 놀라게 한 한국 펜싱의 주역으로 단체전에서 큰 활략을 펼쳐 은메달의 주역이
되었는데, 개인전 오심을 어떻게 극복 할 수 있었는지요? 놓쳤던 메달을 획득한 소감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 신기한 게 올림픽 내내 몸상태가 계속 좋았어요. 펜싱은 섬세한 경기라서 컨디션이 정말 중요하거든요. 개인전
다음날 쉬고 그 다음날부터 몸을 푸는데 계속 몸이 좋은 거예요. 잠도 못 자고 제대로 먹지도 못해 체중이 조금 줄었는데도 막상 게임
을 뛰면 잘되니까, 운동하는 시간만큼은 개인전 일을 잊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은메달을 딴 후, 일단 올림픽 이라는 무대에서
메달을 목에 걸었다는 자체 만으로도 행복했고요, '이런게 가능하구나!' 물론 메달을 목표로 하고 왔지만 실제로 메달을 목에 거니까
잘 믿기지가 않았어요. 하지만 개인전 과는 별개 라고 생각해요. 놓친 메달을 다시 찾았다기보다는 제게 두번의 기화가 있었는데
두 번째 기회에서 그냥 메달을 딴거라고 생각해요.
단체전에서 세계 10위 한국이 8강에서 세계1위 루마니아, 준결승에서 세계5위 미국을 꺽고, 결승에서 세계 3위
중국과 맞붙었는데, 이러한 이변에 대해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요?
남들이 볼때 이변이지만, 저희는 항상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루마니아 같은 경우는 세계 최강팀 으로서 단체전 나오면 무조건
1등 아니면 2등을 하니까 거의 지는법이 없다고 봐야 하는데요. 우리는 또 아시아 팀이고 단체전 출전국 중에서 최하위 이엇기 때문에
아마 다른 나라도 우리가 이길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하지만 우리는 이긴다고 생각하고 들어 갔어요.
은메달을 딸 수 있었던 비결이라면?
팀워크에 많은 중심을 뒀기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서로 컨디션을 챙겨 주었거든요. 일단 저희들 끼리 서로가 서로를 배려 했어요.
서로 다른팀 에서 모였지만, 오히려 다른 팀에서 왔기 때문에 서로에게 어느정도 선을 지키면서 서로 마음을 나누었던 것 같아요.
서로 지켜줄 것은 지켜 주고요. 기술적인 면이라면 손기술만으로는 유럽 선수들을 이기기 힘들어요. 그 선수들은 아주 어렸을때
부터 펜싱을 해서 무의식중에 자연스럽게 동작이 나오거든요. 그에 반해 한국 선수들은 머리로 이해해야 그 동작을 펼칠 수 가 있어요.
손으로만은 절대 이길 수가 없기 때문에 다리로 많이 움직이면서 손기술을 같이 써서 좋은 결과가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걱정되는건,
사람들이 " 이번 올림픽에서 적당히 좀 하지 너무 잘해가지고, 다음에 어떻게 하려고 이렇게 했냐!" 고들 하시더군요. 하하
중략
신아람 선수의 솔직 담백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무엇이 사상 초유의 오심이라는 고난을 겪었던 이 선수를 결국
올림픽 메달 리스트로 만들었는지 조금씩 알 수 있었다. 4년 후 올림픽 금메달 보다 지금 당장 앞두고 있는
국가대표선발전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 하는 신아람 선수, "떨어질 수도 있어요"라며, 어울리지 않는 투정을 한다.
(신아람 선수는 인터뷰 다음날 열린 17회 김창환배 전국남녀펜싱선수권 에페 개인전에서 당당히 우승을 차지
하였고 국가대표선발전에서도 전승으로 국가대표에 선발 되었다.) 매년 있는 국가대표선발전과 국내 경기에
최선을 다 하겠다는 신아람 선수의 다짐이 주는 여운을 뒤로 하고 양구 시외버스터미널로 발걸음을 향했다.
이러한 소박한 한걸음 한걸음이 신아람 선수를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꿈의 실현으로 대려다 줄것을 믿는다.
*이 기사는 '런던올림픽 펜싱 은메달리스트 신아람 선수, 한걸음 한걸음 외에 꿈으로 가는 지름길은 없다'
인터뷰의 일부 입니다.
더 많은 내용은 잡지를 참고 하세요.
개인적으로 신아람 선수의 경기를 보면서 너무 놀라 진정 할 수 없었다. 어느 누구라도 이렇게 엄청난 오심을 당하면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쉽게 말하는 사람들을 간혹 만나는데, 그들은 한번도 마음을 깊이 생각해 보지 않고
입에서 나오는데로 아무렇게나 말하는 사람들이다.
단체전 은메달은 신아람이 얼마나 깊은 마음을 가졌는지 보여 주었다. 만약 내가 그 자리에 선다 할찌라도 가슴에
맺힌 오심의 그림자가 몸과 마음을 옥죄어 손발이 둔해져 있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득도한 고인이 부끄러울만큼 강한 마음을 가진 신아람 정말 사랑스러운 대한의 딸이다.
그래서 더욱 고맙고 감사하다.
재목을 어느청소부.....로 했지만 다양한 삶을 이야기 하려면 전혀 다른사람들의 이야기가 올려 집니다.
양해 하시고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가난 할때는 참고 살았지만
지금은 잘 벌잖아요?
제가 아는 어떤 분은 직업군인으로 근무하다가 전역한 후 갈 곳이 없어서 친구 집 공장에 있는 빈 방에서
가족과 몇년을 살았습니다. 그마져도 친구에게 사정이 생겨 몇 년 뒤엔 나와야 했습니다. 당장 갈곳이 없었
습니다. 겨우 방을 하나 구해 살면서, 바닷가에 있는 야적장에서 경비 서는 일을 했습니다.
한 달에 월급을 1백만원 받았습니다. 그 돈으로 온 가족이 먹고 살면서 세 아이 공부 시키는 일이 몹시
빠듯 했습니다.
하루는 아들이 아버지 에게 운동화를 사 달라고 했습니다.
"아빠, 나 운동화 떨어졌어요,"
"그렇구나, 이 달 월급은 다 썼으니까 한 달만 참아라,"
"아빠 바닥이 다 닳아서 물이 새요."
"그래, 미안하다. 다음 달 월급을 타면 네 운동화는 꼭 사줄께,"
아들이 형편을 뻔히 아니까 더 조르지 않았습니다.
월급날이 되자, 아버지가 제일 먼저 아들을 데리고 운동화 가게에 갔습니다. 비싼 운동화는 한 켤레에 10만 원도
넘지만, 그런 운동화는 사주지 못하고 2만5천원짜리 메이커 없는 신발을 사주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 구두 뒤축이
다 떨어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빠 구두는요?"
"나는 현장에 가면 장화로 갈아 신거든, 오가는 길에만 신기엔 낡은 것도 괜찮다."
"그래도 구두가 다 헤어졌는데, 아빠 구두 하나 사요,"
"나중에 살께, 이번 달에는 우선 네 운동화부터 사서 좋다."
아들은 아버지가 정말 고마웠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마음이 더욱 가가워지고 좋았습니다.
"너는 공부 잘 해서 나중에 훌륭한 사람되라. 아버지 처럼 이렇게 살지 말고 돈도 잘 벌거라."
"예, 그럴께요, 그래도 전 아빠가 좋아요,"
***오늘은 여기까지만 올림니다.***
명절 지내시느라 피곤하실 것이라 생각 됩니다.
휴식은 내일의 자본 입니다. 평안 하시기 바랍니다.
행복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