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대표, 꿈을 꾸고 믿고 저질러라.
[Interview] 지구별 꿈쟁이 <드림 파노라마> 김수영 대표, 꿈을믿고 저질러라.
극심한 성장통을 앓던 10대 소녀 김수영은 실업계 고등학교 최초로 TV방송 도전 골든벨에서 골든벨을 울려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후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안정적인 국제 금융회사에 입사했지만, 초기 암이 발견
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32살의 그녀가 1년간 25개국을 다니며 365명의 꿈을 인터뷰하기까지 여정
을 1727독자들에게 소개한다.
12월 4일 김수영씨가 김포 롯대 백화점의 강연 무대에 올랐다. 거침없이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이야기를 쏟아내는 그녀
의 이야기를 듣노라니 마치 한 편의 드라마 주인공처럼 느껴졌다. 꿈 없이 방황하던 지난 10대 시절부터 소소한 꿈을 찾아 그것
을 이뤄내는 32살의 김수영, 백미터 달리기 주자처럼 쉴 사이 없이 뛰어온 자신의 삶을 강연에서 풀어 놓았다. 25개국을 다니며
영어는 물론, 일상생활에 불편없이 구사하는 스페인어, 일본어, 중국어 회화실력에 인사 정도는 할 줄 아는 이탈리아어, 포르투
갈어 등을 구사하는 김수영, 전 세계인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고 인사했던 그녀는 현장에서 언어 감각을 익히고, 인생을 배우
며 울고 웃었다.
그녀는 하루에도 수백 통의 이메일을 받는다. 6개워 동안 아무것도 실천하지않고 계획만 바꾸려는 대학생 유학을 가야 할지
편입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대학생들, 완벽한 기획 때문에 한발짝도 움직이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메일을 끊임없이 보내기 때문
이다. 그녀는 완벽한 기획안보다 일단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저질러놓고 보라고 말한다.
"수영 씨의 강연을 들으니 나는 뭐했나 싶고, 앞으로 꿈을 꾸고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 할 것입니다." (세종대학교 3학년 K 학생)
"꿈을 이루기엔 주저함이 많았는데 앞선 분의 용기에 힘입어 제 꿈도 실천해 보고자 합니다."(인천대학교 3학년 P학생)
"강연을 들으며 작심 3일이던 생각이 사라지고, 좀더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생각을 해보게 되었어요.(경희대학교 4학년 L학생)
10대, 누구보다 아팠다.
1988년 서울 올림픽으로 건축 붐이 일어, 건축업에 종사하던 김수영의 아버지와 가족은 넉넉한 환경에서 지냈다. 3녀 1남 중 둘
째인 김수영은 어린 시절 야무지고 당찼지만, 초등학교 2학년 때 급격한 생활의 변화를 겪으며 철저히 고립되어 간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빚쟁이에게 쫓기던 가족은 광주에서 여수 시골 마을로 이사했다. 마을 노인들이 모여 막걸리를 마시던 곳에 보금자
리를 꾸민 여섯 식구는 화장실, 주방도 없어 판자로 재래식 화장실을, 시멘트로 주방을 만들어 사용하며 방 한 칸에서 살아야만
했다. 매일 두시간 걸려 학교에 다닌 김수영이 하루아침에 신기루처럼 사라진 현실을 견디기란 어려웠다.자살을 시도한 아버
지는 강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다 아이들의 얼굴이 생각나 그 길로 돌아섰지만, 하루하루의 현실을 견뎌내기 어려웠다고,
어머니도 시장에서 일하며, 채소와 과일을 얻어다 먹였고, 형제들에게 옷을 얻어서 걷어 입혔다.
"엄마가 비빔밥 하는 집에서 달걀 남은 것을 가지고 도시락을 싸주셨는데 그 기억 때문인지 호텔에서 오물렛이 나오면 그렇
게 싫어 했죠."
한창 예민한 청소년 시기라 비관적인 생각이 많았던 어린 김수영은 학교 수업시간에 필요한 과제물을 살 돈이 없어서 힘든 시
간을 보냈다. 초등학교 5학년때는 극심한 왕따를 겪으며 자신을 괴롭히던 학생들이 평생 죄책감으로 살도록 자살할 마음자져
먹었다. 그러던 그녀는 읽고 있던 책<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덮기 전까지 죽을 수가 없었고, 다행이 시간이 흘러 죽음을 면
했다. 하지만 친구들의 따돌림과 세상의 된서리를 맞은 듯한 사춘기를 보내게 된다.
"좀더 존재감 있는 아이가 되고 싶어서 친구들과 춤추고 노래 부르며 하루를 즐겁게 지냈죠, 하지만 선생님의 눈 밖에 나서
혼나기 시작 했어요."
선배의 말만 듣고, 심한 곱슬기를 제거 하려다 되려 노랗게 탈색된 머리 때문에 그녀는 문제아로 낙인 찍혔고 비슷한 환경의
친구들과 어울리다보니 점점 탈선하기 시작했다. 세 번째 가출에서 10대의 김수영은 걷잡을 수 없는 길로 들어섰고, 교통사고를
당한 친구의 죽음까지 목격하게 된다.
<중략>
특히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만난 성대없는 가수 아후바 오제리는 59년간 이스라엘 국민가수로 활동하던 중 성대 암에 걸려
성대 없이 노래를 불렀다. 그녀를 인터뷰한 김수영은 의족 스프린터 오스카 피스토리우스가 다리가 없어도 달리듯 아후바는 성
대가 없어도 노래 하는데,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핑계로 꿈을 포기 하는지 묻는다.
"기회는 널려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모두 생각만 할 뿐 꿈을 실천하지 않아서 그걸 찾지 못하죠. 저는 사람들에게 저지르라고
말합니다. 처음 점수가 10점 20점 밖에 안 되어도 100점을 목표로 하면 70점은 이루어 집니다. 세상에는 하지 못한 일들이 많아
요. 다만 하지 않는 것이죠. 더 많은 분들이 꿈을 찾고 이뤘으면 좋겠습니다."
김수영은 현제 <드림 페스티벌>과 멘토 강연을 진행하며 새로운 꿈에 도전 하려고 준비 중이다. 뉴욕에서 영화공부를 하고,
아시아에서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아프리카에서 자원 봉사를 할 계획이다. 2013년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그럼
에도 불구하고'를 외치며 젊은이들의 멘토로 활동 중인 그녀의 거침없는 행보가 기대된다.
***김수영***
1981년 생으로 중학교를 중퇴하고 문제아 였던 김수영은 여수정보과학고에 입학, 연세대에서 영문학과 경영학을 복수 전공,
대학 졸업 후 골드만 삭스에 입사했지만 암으로 인해 새로운 삶을 계획한다. 그녀의 꿈 리스트 73가지를 시작으로 전세계를
무대로 꿈을 이루고 있는 김수영,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32살의 나이로 25개국을 다니며 사람들의 꿈도 인터뷰 했다. 2
012년 9월 <당신의 꿈은 무엇 입니까> 책을 발간, 현제 드림 파노라마 대표로 강연과 드림페스티벌 및 다양한 사람들에게
꿈의 씨앗을 나누어 주고 있다.
http://blog.never.com/CYBERELF00
* 이 기사는 '지구별을 무대로 도전하는 꿈쟁이 <드림 파노라마> 김수영 대표, 꿈을 꾸고 믿고 저질러라' 인터뷰의 일부 입니다.
더 많은 내용은 잡지를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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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민영 기자/ 사진 홍수정 기자/디자인 김현정 기자
TOMORROW January 2013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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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의 나라에 꿈을 선물 하고자 합니다.
먹는것도 입는것도 많이 부족 하지만 지난날 우리역시 그렇게 가난하고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지요,
그러나 먹고 입는 것보다 더 필요한것이 꿈입니다.
꿈을 잃으면 희망도 잃습니다.이 소년들에게 뛰고 달리는 마음을 선물 하고자 합니다.
절대 부담 갖지 않으시면 좋겠습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공감 한다는 것입니다.^^
흔적을 남겨 주시면 감사하겟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