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땅 케냐에서.
아프리카를 그것도 붉은 땅 케냐를 여행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우리와 다른 풍경, 삶, 그리고 세계 제일의
동물농장(^^) 많은 여행기를 쓰기도 하고 방송 출현도 합니다. 붉은 땅 케냐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온 젊은
청년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일반 여행과는 전혀 다른 케냐의 붉은 땅에서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1년을 봉
사와 절제의 삶으로 견디어낸 이정현씨 의 이야기를 들어 봅니다.
[Interview] (주) 포스코 광양제철소 품질 ㄱ;술부 이정현 붉은 땅 케냐에서 생존법을 배웠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삶의 개혁을 꿈꾼다. 하지만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고 싶어도 인생에서 만나는 열등감과
타성에 젖어 사회가 만들어 놓은 틀에 종속돼 살아간다. 그런데 평범해 보이는 한 청년이 아프리카로 해외봉
사를 다녀와서 자신의 틀뿐만 아니라 주변의 일상까지 바꾸어버리는 생활속 혁신가가 됐다. 아프리카 케냐에
서 얻었던 것은 무엇이고 그가 어떻게 자신의 삶을 변화시켜 나갔는지 그 이야기를 들어본다.
이정현은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금 부회장 선거에 처음으로 당선되고 용기를 얻어 독하게 공부해서 전교 9등을
했다. 하지만 건강문제로 공부하기가 힘들어져 성적이 다시 내려가고 선생님의 관심도 없어지자 노력해도 할
수 없다는 열등감만 커졌다.충남대학교 재료공학과에 장학생으로 입학했지만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선배들
이 후배 들에게 거는 짖꿎은 장난이 유치하다고 생각했던 그는 이후 과 활동에도 전혀 참여하지 않았고 학과 공
부에도 집중하지 못했다.
이때 아프리카 케냐로 해외봉사를 다녀온 사촌 형의 이야기를 들었다.뭔지 모르게 답답했던 한국 생활에서 벗어
나고자 이정현은 해외봉사단에 지원했고 2004년 2월에 비행기를 타고 아프리카 케냐 하늘로 날아갔다.
하늘이 가까운 케냐에서
마냔 더울줄 알았던 케냐는 적도에 위치하지만 고도가 높아 하늘이 가깝고 날씨도 시원했다. 붉은 흙이 깔려있는
벌판을 지나 제주도 시골처럼 야자나무 가로수가 드리워진 포장도로를 차를 타고 가면서 '진짜 아프리카에 왔구
나' 하고 실감했다.
그리고 얼마 않돼 이정현을 포함한 다섯명의 봉사단원들은 건물 공사현장에 갔다. 기초공사를 위해 곡괭이로 직
접 땅을 팠고, 석수들이 돌을 깎아 만든 벽돌을 외발수레에 실어서 날라주기도 했다. 하루는 정화조를 만들기 위
해 단원들이 재래식 화장실 구덩이 안에있는 내용물을 모두 퍼내는 일을 맡았다. 깊이 3m가 되는 구덩이에 약을
풀어서 오물이 묽어지면 그것을 퍼내어 외발수레에 담아 날랐다. 수레가 덜컹거려 그들의 얼굴과 옷에튀면 "야!"
하고 소리지르기 바빴다. 오물구덩이의 윗물을 다 퍼낸뒤 밑에남은 찌꺼기는 직접 들어가서 퍼 올려야 했다. 아
무도 쉽게 나서지 못했다.
"그때 케냐사람 한분이 아무말 없이 맨발로 내려가서 삽으로 오물을 퍼 냈는데, 순간 그 분이 온 마음으로 자신을
희생 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아프리카 사람이라고 더러운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잖아요. 조금이라도 오물에 안
튀어보려고 했던 제 자신이 부끄러웠어요."
그는 공사현장뿐만 아니라 고아원이나 대학교 등 다양한 곳에서 봉사했는데 부족한 영어로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한계를 뛰어넘기 시작했다. 때로 먼길을 갈 땐 몇끼를 굶기도 하고 벌레를 먹어야할 상황도 있었지만 아프리카 라
는 특수한 무대에서 뭐든 경험하고 도전 하고자 했다.
아, 말라리아!
그 중에서도 11월에 걸린 말라리아는 그에게 결코 잊을 수 없는 경험이다. 아파서 입맛도 없는데 주변 사람들이 자
꾸 음식을 먹으라고 그를 괴롭혔다.사실 말라리아는 치사율이 높아서 입맛이 없더라도 먹어야 체력을 유지하여 이
길 수 있는 병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자신이 얼마나 아픈지 모를 거라는 서러움에 먹기 싫다고 고집을 피웠고 봉사
센터 부장님에게 호되게 꾸지람을 들었다. 그는 결국 아프리카에서 가장 귀한 음식인 라면스프 국물에 밥을 말아먹
으면서 서서히 회복됐다.
"그때 고집을 피웠다가 하마트면 죽음까지 갈뻔 했어요, 제 생각, 제 느낌이 믿을 만하지 못하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
았어요. 한국에서 봉사 온 단원으로서 선구자라는 훌륭한 모습을 보이고 싶었지만 결국 또 그렇게 실패를 맛봤지요.
그렇다고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기 때문에, 그때부터 사람들에게 실패한 제 모습, 가장숨기고 싶었던 수치스러운
부분을 털어놨지요.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혼했다가 다시 합치신 것, 그동안 동생과 저는 할머니 댁에서 지내야 했던
일들, 그리고 가정 불화를 숨기려고 외톨이 처럼 지냈던 학창시절 등 제 스스로 부끄러워 말하지 못했던 속 이야기를
꺼내 놨어요."
신기하게도 그때부터는 자신과 만나는 사람들의 관계가 정말로 자유롭고 행복하게 변했다고 한다. 마치 푹푹찌는 여
름에 방안에만 있다가 바닷가로 뛰어나가 땀에 흠뻑 졌었던 몸을 시원한 바닷바람으로 말려버린 것 처럼, 고집 스런
생각속에 갖혀 있던 그의 마음에 새롭고 힘찬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무표정의 무서워 보였던 케냐 흑인들이 그의 이
야기를 듣고는 큰 두 눈에 가득고인 눈물과 함께 웃음짖는 것을 보며, 그는 처음으로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따뜻
한 정을 느꼈다.
이상한 놈 하나 들어왔다.
해외봉사활동을 완수하고 돌아온 이정현은 더 이상 도망 가거나 숨지 않았고, 뭐든 도전하고 즐기는 지세를 갖추게
되었다. 귀국 후 입대했을 때는 휴가 나갈 때마다 가져온 책들을 읽음으로써 공부하지 않던 내무반 분위기를 밤늦도
록 책 읽고 공부하는 분위기로 바꾸어 놓았다. 제대후 복학 해서는 실험실을 배정받았는데, 실험실에서 컴퓨터 게임
만 하는 선배와 동기들 바로 옆에서 당당히 책을 펴고 공부했다. 그들은 처음에 "또 이상한 놈 하나 들어왔다"하고 무
시 했지만 한두 명씩 이정현에게 물들기 시작했고 어느새 실험실은 으례 책을 펴고 공부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케냐에 다녀와서 모든 것이 변했어요. 가릴 것이 없어지니까 뭐든지 할 수 있었고 누구와도 교류가 원할해졌어요.
워낙 성적이 나쁘다 보니 모르면 후배에게라도 물어봐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같은 학년이지만 1년 후배인 친구들과
그룹 스터디를 진행 했어요. 전에는 '시험에 나올 것들 중에 다른 것은 보여 주더라도 이것만은 안 보여줘야지'하고
숨겼던 비밀 무기들도 스터디에서 공유하면서 선의의 경쟁을 했어요. 후배들은 그런 저를 믿고 잘 따라 줬고 어느새
우리는 학업 고민과 인생 상담까지 나누는 사이가 됐어요."
학과생활에 전혀 관심이 없던 그는 그룹스터디에 참여한 맴버들과 함께 학과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주력 맴버가
되었고 학과 분위기도 학생회 중심이 아닌 그를 중심으로 바뀌기 시작 했다.
중략
세계 최고의 제철회사 포스코에서 그는 세계 최고의 엔제네어로 성장하여 하나의 기술, 하나의 공정을 책임지는
임원이 되는 것이 목표다. 긍정적이고 자유로운 마음으로 일상적인 것을 깰 줄 아는 그가 먼 훘날 어던 리더로 우
뚝 서게 될지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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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충남 대학교 재료공학과를 졸업하고 광양 포스코에 입사했다. 1년후 신입사원 평가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현제 입사 3년차인 그는 책임 연구원으로 있다. 그는 과감한 도전의 비결을 아프리카에서 해외봉사하며 배운
강인한 마음이라고 말하며 대학생이라면 꼭 해외봉사에 도전하길 권한다.
* 이 기사는 '(주) 포스코 광양제철소 품질기술부 이정현, 붉은 땅 케냐에서 삶의 어던 어려움도 참고 견디는
생존 법을 배웠다' 이터뷰의 일부 입니다.
더 많은 내용은 잡지를 참고 하세요.
글 전진영 기자/ 디자인 김현정 기자/ 사진 배효지 기자
TMORROW April 2013 무단 전제 및 재배포 금지
빠른 걸음으로 찾아 뵙지 못해 죄송 합니다.
아직 2주 가량은 더 많은 시간을 소요하는 일이라
양해 말씀 올립니다.
행복한 5월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