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마음의 교감

epika2 2014. 1. 25. 14:52

Campus          마음의 교감交感에서

                            칼럼               느끼는 행복                                

 

 

 마음의 교감, 요즘 젊은이들이 쉽게 생각해 내지도 못할 것 같은 단어 입니다. 어떻게 마음의 교감이

이루어 지는가는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며, 마음이라는 단어조차 잊고 사는 요즈음 마음의 교감을 이

기 하면, 눔만 말똥히 뜨고 쳐다보는게 고작인 학생들이 더 많은듯 합니다. 오늘은 '이 한규 선생님

의 고전에서 익히는 지혜를 들어 봤습니다. 현대사회의 가장 어두운 마음의 세계에 마음의 교감이 이

루어져서 아름다운 사회와 아름다운 삶이 젊은이들의 마음에 자리하기를 바라면서 글을 올립니다.

 

 

조선시대 유학자 퇴계 이황 선생은 둘째 아들 채寀가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아내를 잃었다. 아들은 경상도 의

령의 외가에서 키웠는데 몸이 워낙 약했다. 결국 퇴계가 단양군수丹陽郡守로 있던 때에 아들은 21살의 나이

로 세상을 따났고, 둘째 며느리는 자식도 없이 청상 과부가 되고 말았다.

 

 

 

퇴께 선생은 홀로된 며느리가 '열녀불경이부列女不更二夫'의 유교적 관념이 확고하던 시대에 규범과 체면

에 얽매여 남은 인생을 쓸쓸히 보내야 한다는 현실에 너무 가슴이 아리었다. 자신 역시 태어난지 7개월 만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홀어머니가 평생 7남매 뒷바라지로 희생하며 살아오신 것을 보았기에 더욱 측은했는

지도 모른다. 애처러운 며느리에 대한 퇴계의 근심은 점점 깊어갔다. 당시에는 과부를 강제로 보褓에 싸서

납치해 아내로 삼던 풍습이 있던 시대라서 혹시라도 무슨일이 생기면 자기 집이나 사돈집 양쪽에 다 고통스

러울 것이기에, 퇴계 선생은 밤이 늦도록 며느리가 기거하는 후원 별당을 돌면서 보살피곤 했다. 그러던 어

느날 밤, 후원을 돌고 있는데 며느리 방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고 며느리가 누군가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

누고 있는 소리가 새어나오는 것이었다.

'이렇게 깊은 밤, 며느리 방에서 이 무슨 해괴한 소리란 말인가?' '야심한 밤에 며느리가 외간 남자를 불러 들

인 것은 아닐까?' 하여 퇴계는 온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점잖은 선비로서는 차마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퇴계는 며느리의 방을 엿보지 않을 수 없었다. 며느리 방 앞까지 가서 창호자 틈으로 방 안을 살짝 들여다 보

았다. 며느리는 술상을 차려 놓고 짚으로 만든 남편 모양의 허수아비와 마주 않아 산 사람에게 하듯 말을 건

네고 있었다.

"여보, 한잔 잡수세요."

며느리는 한참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혼자 하다가 흐느끼기 시작 했다.

 

퇴계 선생의 둘째 며느리 사랑

그날 밤, 퇴계 선생은 가슴이 아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도대체 윤리는 무엇이고 도덕은 무엇인가? 사람이

만든 규범에 갇혀 저 젊은 며느리가 밤마다 눈물로 세월을 지새며 평생을 수절해야 한단 말인가?윤리와 도

덕은 인간의 행복을 위하는 것이어야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저 아이를 수절시키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

다, 인간을 고통스럽게 하는 규범에 인간이 구속되어서는 않된다.' 퇴계 선생은 '저 아이를 자유롭게 풀어주

어야 한다'는 결심을 굳히게 되었다.

며칠뒤 퇴계는 사돈에게 직접 말 할 수는 없었지만 딸을 재혼시키라는 뜻으로 며느리를 친정에 돌려 보냈다.

딸에게 좋은 실랑감을 물색해 새 삶을 살게 해 주라는 시아버지의 배려였다. 물론 퇴계 집안과는 사돈의 인

연이 끝나는 일이라서 한편 서운하기도 했지만,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여러 해가 흐른 뒤 퇴계 선생이 한양으로 올라가는 길이었는데 날이 저물었다. 하는 수 없이 산촌 민가에 하

룻밤 묵는 신세를 져야 해서 어떤짐의 문을 두드렸다.

"한양으로 가는 과객過客인데 실례가 않된다면 하룻밤 묵어 갈 수 있겠습니까?"

"노인께서 이 밤에 어디서 오시는지 모르지만 빈 방이 있으니 주무시고 가십시요. 이 아랫방에 이부자리를

준비하겠습니다. 그리고 먼 길 오시느라 시장하실 텐데, 제 아내를 시켜 저녁상을 준비 할 테니 드십시요."

"고맙소이다."

인심이 후한 젊은 주인이 친절하게 하룻밤 묵어 가라고 방을 내주었다. 고마운 마음으로 여장을 풀고 잠시

쉬고 있는데, 저녁상이 들어왔다. 시장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음식 하나하나가 그렇게 맛이 있을 수가 없었

다. 간이 선생의 입에 아주 딱 맞아 너무 맛있게 먹었다. 다음날 아침 식사를 하고 가라고 해서 또 밥상을 받

았는데, 신기하게도 전날 저녁처럼 퇴계가 평소에 좋아하는 반찬들이 즐비했다.

'참 이상한 일이로다. 우연히 들른 집 음식이 어찌이리도 내 입맛에 꼭 맞을까?' 밥상을 물리고 고맙다고 인

사를 하고 그 집을 나서려는데, 젊은 주인은 가시는 길에 신으라고 안사람이 만들었다는 버선 한 켤레를 가

져다 주었다.

"아니, 낯 모르는 과객에게 버선까지 지어주다니 너무 고맙소이다. 이 은혜 평생 잊지 않겠소이다. 나는 안동

에 사는 이황이라고 하오."

그런데 또 버선을 신어보니 너무 편안하고 발이 꼭 맞았다. '꼭 우리 둘째 며느리가 지어주던 버선같군,'  퇴

계가 주인과 작별하고 길을 떠나는데 담 모퉁이에 서서 몸을 숨기고 눈물로 배웅하는 여인이 있었다. 한눈에

둘째 며느리 임을 알 수 있었다. 퇴계 선생은 행여 재혼한 며느리의 결혼생활에 방해가 될까 싶어 모른 체하

며 길을 떠났으나 늘 마음에서 둘째 며느리를 잊지 못했다.

 

'어쩐지 음식이 입에 꼭 맞아 이상하다 싶었더니, 그리고 버선도 발에 꼭 맞더라 했더니 과연 그랬구나, 주인

의 모습을 보니 이제 내 마음이 놓이는구나, 그렇게 착하고 심성좋은 남편과 오붓하게 사는 걸 보니 앞으로

는 네 걱정 안 해도 되겠구나, 부디 행복하게 살아라, 고맙다. 너를 이렇게 여기서 만날 줄 몰랐는데, 하늘이

이런 기회를 만들어 주었구나.'

한양으로 향하는 시아버지의 마음은 너무나 행복하고 가벼웠으리라.

'아버님, 그렇지 않아도 꼭 한번 뵙고 싶었는데, 이렇게 만나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종종 아버님 생각이 나곤

 했습니다. 자상하게 저를 보살펴 주시고 배려해 주신 아버님께 따뜻한 진지라도 손수 지어드리고 싶었는데,

아버님께서 저희 집에까지 오시다니 꿈만 같습니다. 남편을 여의고 큰 슬픔을 감당하기 어려웠지만 아버님

덕분에 저는 지금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지금의 남편은 비록 많이 배우고 잘난 사람은 아니지만 마음은

착하고 후한 사람입니다. 아버님 남편 때문에 인사도 제대로 못 드렸지만 안녕히 가세요. 부디 건강하시고

제 걱정은 마세요.'

아마 둘째 며느리도 이런 마음이었으리라.

 

 

 

마음의 교감이 불행을 이기는 비법

사람이 살다보면 누구나 한두 번씩은, 어떤 사람은 여러번 뜻하지 않은 어려움을 만나기 마련이다. 사람의

힘으로 미리 막을 수도 없는 그런 고통과 슬픔은 우리를 어두움과 좌절 속에 몰아넣기도 한다. 그러나 슬픔

과 고난 속에서도 자기 마음을 알아주고 배려해주는 사람을 만나면 위로를 얻고 행복해진다. 그 마음의 교감

交感안에서 고통과 슬픔은 눈 녹듯 사라지고, 대신 감사와 행복이 만들어진다. 마음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

하는 약은 바로 사랑이고 배려하는 마음이다. 그런 마음을 가진 가람을 만날 때 고통은 줄어들고 우리마음

의 상처는 빨리 아물어 세상은 아름답고 따뜻해 진다.

퇴계 선생이 둘째 며느리를 친정으로 돌려보낸 후, 시아버지와 며느리는 서로를 염려하고 애틋하게 그리워

하다가 우연히 이루어진 한 번의 만남 속에서 얼마나 많은 마음 속 말들이 무언의 대화로 오고 갔겠는가?  그

마음의 교감은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가? 짧은 한 번의 눈마주침이었지만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마음을

만나고, 며느리는 시아버지의 깊은 마음을 읽으면서 참으로 감사했으리라. 내 마음이 가고 상대편 마음이 오

면서 마음은 서로 흐르고 가까워 진다. 예나 지금이나 마음의 교감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고 슬픔과 어려움

을 딛고 일어서게 하는 영약靈藥인 것이다.

 

이렇게 잘 사는데도 행복하지 않다면?

우리나라는 지난 반세기 동안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루어 왔다.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딛고 폐허가 된 나라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한 결과 '한강의 기적'을 만든 것이다. 1960년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 소득은 79달러(같은 해 북한은 137달러, 필리핀은 254달러)로 지구촌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

나였다. 이 당시엔 먹고 사는게 최대 목표였다. 그랬던 우리나라가 1996년 에는 선진국 클럽으로 불리는

OECD에 회원국으로 가입했고, 2011년 1인당 국민 소득은 24,000달러를 기록하면서 우리 경제는 50년 동안

300배 가까이 성장했다. 원조를 받던 나라가 다른나라에 원조를 해주는 유일한 나라로 변모한 것이다. 그런

데도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다. 물질적 풍요나 편리한 문명의 이기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충분히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은 사람의 행복이 결코 물질의 풍요에 있지 않으며, 마음에 있다는

사실을 잘 입증해 주는 것이다.

 

 

 

함께 있으나 홀로인 우리들의 허전한 마음

오늘날은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의 디지털 기기로 사람들은 네트웍화된 테크놀로지 세계에서 살고 있다.

지하철을 타면 앉아 있는 사람이나 서 있는 사람이나 온통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자기 앞에 노약자나 장애

인이 서 있어도 관심 밖이다. 심지어는 지하철에서 내려 계단을 오르면서도 스마트폰에 집중하고 있는 사람

들이 많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다니는 스마트폰은 우리 삶을 급속도로 바꾸어 놓았고, 이 작은 기기

가 청소년들에게는 자아 정체성을 빼앗아버릴 정도로 위협적이다. 스마트폰에 중독된 아이들은 부모와 눈

을 마주치지않고, 이어폰을 낀 체 잠든다. 스마트폰에 집착하면 무엇보다도 주변 사람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진다는 점이 큰 병폐이다. 메사추세츠공대MIT 사회심리학자인 셰리 터클 교수는 이러한 현상을 '함께

있으나 홀로Alone together'인 사람들이라고 표현했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혼자 음악 듣고 영화 보고

핑하고 친구와 언제 어디서든 대화가 가능하다. 굳이 가족이, 친구가 없어도 하루를 재미있게 보낼 수 있는

세상이다.

퇴계 선생이 살던 조선시대에는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이나 친구를 일 년에 한두 번도 제대로 만나기 어려웠

다, 그래서 어쩌다 안부를 묻고 근황을 전하려면 생각을 깊이 하고 온 마음을 담아서 편지를 썼다. 그런데 글

로벌 네트워킹은 깊고 정성스런 마음의 세계는 간과하고 필요한 정보와 의견만 전달하는 방식으로 단순화

시켰다. 디지털 기기로 통신을 할 때는 얼굴을 맞대고 하는 대화와 다름 습성을 배우게 되고, 따뜻한 정감이

나 애틋한 마음이나 사랑하는 마음은 제대로 주고 받을 수 없게 된다. SNS가 일반화 되면서 마음을 나눌 친

는 줄어들고, 문자외 이메일을 즐겨 사용할수록 마음의 대화는 낯설고 서툴어진다. 결국 사람과 사람이 어울

리는 시간은 적어지고 테크놀로지와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는 것이다.

김치나 된장이 잘 숙성되면 인스턴트 식품이 따를 수 없는 깊은 맛이 난다. 마음의 세계나 인간 관계도 그렇

다. 퇴계 선생이 며느리의 재혼을 허락할 수 있었던 것은 즉흥적인 감정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젊은 며

느리의 인생을 걱정하고 앞날을 위하는 사려깊은 마음에서 나온 선택이었다. 며느리에게 외롭지 않냐는 직

접적인 질문을 한 적은 없었지만 시 아버지의 사랑을 며느리도 헤아릴 수 있을 정도로 퇴계 선생의 결정과 행

동은 신중한 것이었다.

마음의 세계가 잘 발효되면 겨우내 땅 속 장독에 묻어 두었다가 꺼내먹는 김치처럼 새콤하고 매콤 하면서도

깊은 맛이 있다. 첨단 기기들의 편리함을 선호하면서 우리는 그윽한 이 맛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세상이 삭막

해지고 인간 관계가 건조해 지는 것이다. 퇴계 선생과 둘째 며느리 사이에 흐르는 깊은 정과 말없이 서로를

위하는 마음은 바로 이런 맛이다. 미래의 시대를 이끌어갈 청소년들은 테크놀로지 세상에서 잃어버린 소중

한 마음의 세계를 하나하나 되찾고 지켜나가야 한다. 그래야만 내일의 우리 세상은 더욱 따뜻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될 것이다.

 

글쓴이  이한규

대구대학교에서 국어교육학을 전공했다. 현제 대안학교인 링컨스쿨 교장으로 재직하며, 청소년들을 대상

으로 마인드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정리  ㅣ  전진영 기자                                                                                                                          

 

거의 3주만에 제자리에 돌아왔습니다.

그동안 기다려 주신 친구님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