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서 만난 남학생
People 서점에서 만난 남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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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 강 때면 계산하고 바로 나오기가 아쉬워 이 책 저 책 뒤적이게 된다. 손수 차린 것보다는 해준
밥상이 더 반갑듯이 남들이 쓴 책들에 분주히 눈길과 손길을 보내고 있는데, 대학생쯤 되어 보이는 남
학생이 방해하기 미안하다는 듯 조심스레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엄마들이 잘 보는 월간지가 무엇이
냐고 묻는다. 선뜻 내가 정기구독하고 있는 책을 권했다. 이어 또 다른 책도 추천해 달란다. 옆에 있던
요리 기사가 많이 나오는 월간지를 권했더니 처음 조심스레 묻던 것과는 달리 또 골라 달라는 것이다.
엄마에게 웬 책을 여러권 선물하는지 궁금해서 물었다. 친구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하셨는데 병문안 선
물을 고르는 중이라고 한다. 환자는 쉬어야 하니 두 권만 가져가도 충분히 보실 거라 했다. 그 말에 꾸
벅 감사인사를 하고 계산대로 간다. 그 뒷 모습을 보며 병문안 선물로 흔한 음료보다 책을 고르는 마음
씀씀이가 신선하게 다가왔다. 내게 방해될까 싶어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모습도 흐믓했다.
저녁에 남편에게 그날 서점에서의 이야기를 하니까 끝말에 '혹시 여자친구 어머니께 병문안 가는 건 아
닐까' 한다. 거기까지는 나도 생각을 못 했는데 듣고 보니 수긍이 가기도 한다. 순간 앞으로 내 딸의 남
자친구도 그런 모습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책 선물을 고르는 남학생을 보아도 그렇고, 가끔 가는 작가와의 대화 강좌에도 보면 내 또래보다는 젊
은이들이 많다. 전에 딸들과 같이 갔던<아프니까 청춘이다> 김난도 교수의 특강에도 젊은이들이 몰려
와서 통로에까지 앉아 있곤 했다. 요즘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져서 지하철 안
벽면 광고도 사라져 가고 있으며, 옆사람이 무얼 하든 상관없이 휴대폰 화면에 눈을 고정시키고 있는 사
람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시대의 흐름을 보면 저자의 생각을 직접 듣겠다고 강좌에 찾아오는 젊은 그들
이 귀하고 고맙기까지 하다.
이런 훈훈한 풍경이 있는가 하면, 가끔 도서관에서 안타까운 장면을 목도하기도 한다.
도서 대출을 하는 데 자녀가 원하는 책보다 엄마가 고른 책을 강권하는 모습을 볼 때 그렇다. 아직은 아
이들이 어려서 엄마의 설득에 마지못해 수긍하는 것을 보면 안쓰럽기 조차하다 가끔 당당히 원하는 책
들을 골라오는 아이들을 볼 때면 기특하다. 혼자 책을 고르면 처음에는 장르나 주제가 편중될 수 있지
만 스스로 고르는 과정이 반복되다보면 책을 대하는 시야가 넓어질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다. 격주로
하는 도서봉사 때도 보면 자녀는 학원에 갔다며 엄마가 대출, 대납을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 호기심과 궁
금증으로 책 고르는 재미가 독서를 평생 가까이 하게 해주는 동인이 될진대, 그 재미를 미리 앗아가는
엄마들의 과잉친절이 내게는 아쉬움 가득한 풍경이다. 대납은 몰라도 대출 만큼은 자녀가 직접 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어느 교수는 자녀가 학생일 때 문제집 살 돈을 달라면 책 한 권 값을 더 얹어 주었다고 한다. 문제집 외
에 서점에서 읽고 싶은 책을 스스로 골라 사 읽게 한 것이다. 한 권 을 고르기 위해 여러권을 들추다보
면 잠시 대했던 책이지만 잠재의식 속에 남아있게 된다고 한다. 그렇게 스스로 선택해 고른 책은 끝까
지 읽게 되고 반복되다 보면 책에 대한 안목이 넓어지고 깊어질 거라는 그 교수의 생각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 진다.
서점에서 만난 학생도 그런 학생 중 한 명이 아닐까. 남들이 흔히 생각하는 병문안 선물보다 책을 자연
스레 떠올린 것을 보면 말이다. 자신의 관심분야 책이면 선뜻 골랐겠지만 엄마들이 즐겨보는 책을 고르
려니 내게 물어본 것일 것이다. 내가 환자였다면 어떤 선물보다도 반가웠을 텐데, 받는이의 취향을 모
르니 그 잡지가 마음에 들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그날이 책을 받은 이에게도, 선물한 남학생 에게도,
내가 추천한 잡지의 제목을 약간 바꾼 '행복이 기득한 하루'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덩달아 나도 그런
하루 였던 것처럼,
글쓴이 이 현규
현제 안양수필문학회원과 안양문학협회원으로 활동 중. <투머로우>열혈독자인 그가 일상에서 느낀 경
험을 담은 에세이를 기고해 주었다.
정리 ㅣ 김양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