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확실히 낫겠구나!" 2번째 이야기를 올립니다.
세계 의학계에서도 백신은 커녕 어떻게 손을 써보지 못하는 루불리 궤양의 치료는
현대 의학의 한계를 보는 느낌입니다만(언젠가 TV에서 본적이 있었는데) 정말 비
참하고 안타까워 가슴아픈 기억이 있었습니다. 황효정 원장님의 연구 결과 세계가
놀랄만한 성과를 보였습니다. 황 원장님의 이야기를 계속 들어보겠습니다.
한방약으로 아프리카 풍토병을 치료한다.
부룰리 궤양 환자들이 주로 분포한 코트디브아르, 베넹, 토고 등에서는 국가적으로 국제기구와 협력을
도모하며 질병퇴치를 위해 연구에 전력을 쏟고 있지만 아직까지 근본적인 방안을 찾지 못한 상태라고
한다.
우연한 기회에 부룰리 궤양 환자들을 알게 된 상황에서, 현대의학이 만들어내는 가장 강력한 항생제도
효능이 없는 병을 한의사인 자신이 한방적 개념으로 치료 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고 황 원장은 말
한다. 처참한 환자들을 속수무책으로 그냥 두고만 와야 한다는 것이 못내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때 그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자신이 개발해서 사용하고 있는 전문치료법이 떠올랐다.
한약 중에 피부염증을 가라 앉히고 새 살이 돋아나게 해서 병든 새포를 몰아내고 아물고 딱지지게 하여
원래 상태로 복귀하게 하는 역할을 하는 약이 있는데, 그 약을 한번 써 보자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한국
에서는 아토피 환자 치료용으로 사용하는 약이었다.
황 원장은 그 약을 현지인 의사에게 주며 환자들에게 복용하게 하고 환자들 관리를 부탁 했다. 한 달 후
에 반응 정도를 확인하기 위해 카메라, 노트북, 체온계, 혈압계 등도 함께 주었다. 약이 효과가 있기를
바랐지만 기대하지는 못했다.
한 달 후, 현지인 의사가 찍어보낸 환자의 사진을 보고 황 원장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환부가
아주 조금씩 아물고 있었던 것이다. 약을 먹은 지 두 달 후에 찍은 사진도 보내 왔는데, 전보다 상태가
더 호전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야, 나아지고 있구나, 그럼 나을 수도 있겠구나!' 희망이 보였고, 그
때의 감격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 였다 한다.
치료 효과가 있다고 해서 함부로 약을 복용시킬 수는 없기에 현지에서 독성검사를 받아 안전하다는 확
인을 받은 후 지속적으로 약을 먹게 했다. 2013년에 다시 코트디브아르에 가서 그동안 꾸준히 약을 먹
었던 환자 43명을 만나 호전 상태를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또 추가로 40여 명에게도 약을 주
고 왔는데, 거의 대부분 치료되고 있는 상태라고 한다. 그 중에는 도중에 약을 믿지 못하고 나뭇잎을 붙
이는 민간 요법을 사용해 심각하게 재발된 사례도 있었지만 다시 약을 먹고 좋아졌다고 했다.
"그 마을에서 가장 상태가 심했던 7살의 카피Kaffi라는 여자 아이가 있었어요. 처음에는 오른쪽 무릎 아
래가 거의 썩어가는 끔찍한 상태여서 걸을 수도 없어 엄마가 업고 왔어요. 그런데 작년에 가서 보니, 제
가 준 약을 먹고 새 살이 나고 점차 좋아져 혼자 잘 걸을 수 있게 됐더라고요. 얼마나 기뻣는지 몰라요.
카피에게 한국에서 가져간 과자도 주고, 한번 안아도 줬어요. 제가 준 약을 먹으면 피부이식을 안 해도
되고 다리를 절단하지 않아도 되는 거지요. 이런 경우는 부룰리 궤양 역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환자들의 치료 과정이 담긴 사진을 한 장 한 장 보며 마치 기적의 순간을 보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설마 한약이 풍토병을 치료할 수 있을 거라고는 감히 생각도 못했지요. 그런데 작년에 가서
호전된 환자를 보고 나서 이 약으로 부룰리 궤양을 고칠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확인하고 왔습니다. 작
년에는 대학병원 원장이 국립보건부의 디렉터를 소개해 주고, 그 디렉터가 부룰리 궤양 담당센터장과
청소년부 장관도 소개해 줘서 이 약에 대해 소개할 수 있었습니다. 올해는 대학교수와 임상시험을 해서
더 많은 환자들에게 약을 공급 하려고 합니다."
황 원장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치료 범위를 넓혀가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 같았다. 하루 빨리 모든 부
룰리 환자들에게 약을 공급해 그들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대학생들도 충분히 함께할 수 있습니다.
황 원장은 의료봉사활동에 비의료인인 대학생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생명'이라는 뜻을 가진 대학생 의
료봉사단 '우하이' 결성도 추진해 활동하고 있다.
"의료봉사라고 하면 의료인들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요. 의료인이 아니라도 현지인들과
교류하며 태권도와 한글도 가르치고, 한복도 입어보게 하고, 아이들과 같이 뛰어 노는 것도 아주 의미
가 있습니다. 또 간단한 상처 드레싱 정도는 누구나 배우면 할 수 있기 때문에 대학생들도 충분히 함께
할 수 있습니다."
보통 한 해에 십여명의 대학생들이 아프리카에 같이 가는데, 의료봉사에 참가하고 나면 학생들이 무척
좋아한다고 한다. 단순한 노력봉사만 하고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금 얼마나 좋은 나라에 사는지
도 알게 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스스로에게 물음도 던져보고, 불쌍한 사람들
을 보며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하다 보니 한층 성숙해지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란다. 대학
생들 중에는 의료봉사 후에 의대 공부를 시작한 학생도 있고, 국제민간교류 단체에서 일하겠다는 학생
도 있고, 아프리카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전공을 살려 더욱 연구하고 공부하고 싶다는 학생도 있다고
했다. 남을 위한 봉사가 자신을 더욱 성장하게 만들기에 진로를 고민하는 대학생이 있다면 의료봉사에
함께하기를 적극 권장한다고 황 원장은 말한다.
아픈 아이들을 마음으로 안아만 주어도 충분하다.
해마다 아프리카에 갔다 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비용도 많이 들고, 열흘씩 병원문도 닫아야 하기
에 경영상의 타격도 크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맛을 한번 보면 매년 갈 수 밖에 없다고 한다.
"한국에서 환자들를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곳에 가면 의사로서 보람도 더 크고, 제가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봉사하려고 합니다."
그는 올 8월에도 어김없이 부원장인 아내와 동행하여 코트디브아르에 갈 계획이다. 아내와 같이 가면
보람도 두 배로 느끼고, 즐거움도 두 배란다.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도 같은 의료인 으로서 마음이 하나
가 되어 봉사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고, 특히 올해는 부룰리 거ㅔ양 환자들을 다시 만날 생각으로 어
느 때보다 더 행복하기만 하다.
대학시절 순수한 마음으로 봉사하던 때가 있었지만 의사가 된 후에는 생업에 종사하느라, 또 생색내기
같아서 의료봉사에 선뜻 발을 내딛지 못했다는 황 원장, 이제는 자신의 의료 봉사가 아프리카 사람들에
게 희망이 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의료인으로서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라고.
황 원장은 앞으로 할 일이 더 많아졌다. 논문을 작성해서 학계에 보고도 해야 하고, 부룰리 궤양이 퍼져
있는 나라의 환자들이 모두 다 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나라마다 병원도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올해도 부아케 주변 마을 사람들도 만나고, 코트디브아르 정부관계자들도 만나러 갑니다. 많은 분들이
성원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픈 아이들을 마음으로 안아주고, 불쌍히 여겨주고, 사랑도 해주고, 같이 놀
아 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황 원장을 만나고 나오는 길에, 시 한 편이 떠올랐다.
"내가 만일 애타는 한 가슴을 달랠 수 있다면/내 삶은 헛되지 않으리라/내가 만일 한 생명의 고통을 덜
어 주거나/괴로움을 달래 주거나/또는 힘겨워 하는 한 마리의 로빈새를 도와서/ 보금자리로 돌아가게 해
줄 수 있다면/내 삶은 정녕 헛되지 않으리라." -애밀 디킨슨(1830~1886)
안물사진 ㅣ 홍수정 기자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황 원장님의 나아가는 길이 환하게 밝게 비춰져 부룰리 궤양이라는 병이 모두 사라지길 바랍니다.
마인드 교육입니다.
자세히 읽고 마음에 담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건 확-실 하단 말예요.
둘째 아들은 먼 나라에서 허랑방탕하게 살아 가지고 간 돈을 다 허비했습니다. 바보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처음에는 자기가
하고 싶어서 술을 마시고, 게임을 하고, 마약을 합니다. 그런데 어느 시점을 지나면 거기에서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그때는 하고 싶지 않아도 계속 하게 됩니다. 그것은 어떤 힘이 사람의
마음을 끌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열심히 공부해 좋은 직장에 들어가서 돈을 많이
벌 수 있슴니다. 그런데 유혹의 올가미가 여러분의 목을 걸 때 거기에 한 번 걸려들면 누구도
정상적으로 사고 하거나 행동할 수 없습니다. 거기에 빠져 버립니다.
한번은 제가 차를 타고 가고 있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박옥수 목사님이세요?"
예 그런데요"
"여기 용인정신병원인데, 목사님의 도음이 꼭 필요합니다. 굉장히 어려운 환자 한 사람이
있는데, 병원까지 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며칠 후, 아내와 함께 용인정신병원에 찾아갔습니다. 환자는 키도 크고 얼굴도 예쁜 30대
부인인데, 쇠창살이 있는 방에 갖혀 있었습니다. 그 방에 들어가서 그 부인과 이야기를 나누
었습니다.
"목사님 저는 너무 불쌍해요."
그 부인은 처녀 때 미국에 살면서 항공사의 스트어디스로 일 했는데, 다른 항공사에 근무
하는 남자 직원과 연애해 결혼하면서 한국으로 와서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 부인 말로는,
자기가 그처럼 남편 하나 믿고 모든 것을 버리고 한국까지 왔는데, 남편이 밤마다 건너편 아
파트에 사는 독신녀에게 가서 자고 온다는 겁니다. 그 이야기를 하면서 벌벌 떨며 분개했습
니다.
남편이 그처럼 다른 여지 집에 간다면 가서 대리고 오면 되는데, 밤마다 자고 오게 놔둔다는
것이 이상해서
"남편이 그 여자랑 자고 오는 것을 어떻게 알았어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부인이
"목사님 내가 미치는게, 나는 잠만 자면 송장이거든요!"
하는 겁니다. 더 이상해서
"잠든 상태에서 남편이 그 여자와 자고 온 것을 어떻게 알았어요?"
하고 물으니까
"목사님, 그건 확-실하단 말이예요!"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 부인이 어느 날 아침에 잠에서 깨어 옆에서 자고 있는 남편을 보면서 갑자기 남편이 밤에
건너편 아파트에 사는 독신녀와 자고 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독신녀와는 잘 알지는 못
하고 서로 인사 정도 하며 지내는 사이였습니다. 그 부인이 화가 나서 자는 남편을 마구 흔들
어 깨웠습니다.
"당신 어젯밤에 어디 가서 잤어?"
"어디 가서 자긴? 여기서 잤잖아."
"왜 거짓말을 해? 어젯밤에 건너편 아파트 혼자 사는 여자 집에 갔다왔지?"
"무슨 소리야? 여기서 당신하고 잤잖아"
이 부인이 남편하고 싸우다가 화를 참지 못해 그 독신녀가 사는 아파트로 뛰어갔습니다.
그 집 문을 마구 두드리니까 그 여자가 영문도 모르고 문을 여는데, 바로 들어가서 마구 두
들겨 팼습니다. 그 여자가 경찰에 신고했고 출동한 경찰이 그 부인을 데려갔습니다. 경찰이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의부증이라서 훈계하고 그냥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부인
이 여전히 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더 심각한 문제를 일으켜서 결국 정신병원에 들어
가게 된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참 우습다는 생각이 들 겁니다. '어휴! 그런 바보가 어디 있어?'
그렇지 않습니다. 예쁘고 똑똑한 부인인데, 한번 그런 생각에 빠져드니까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어서 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무 이유 없이 아내나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는 생각이 든다든지, 결혼 했는데 다른 여자나 남자가 더 좋아 보인다든지, 잘 못된 방
법이지만 돈을 벌 수 있는 길이 보인다든지 등등 수 많은 생각들이 우리를 찾아옵니다. 그 생
각을 받아들여서 일단 거기에 빠져들면 어떤 힘이 작용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사고가 되지 않
고, 쉽게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건강한 여름 보내시길 빕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