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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

epika2 2014. 11. 26. 22:32

 

 

봉사,

누구나 할 수 있으나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 봉사라는 일인줄 안다.

봉사는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보고 듣고 알 수 있는 일이지만

실제 삶 속에서 마음으로 다가가기엔 어려움이 많다. 항상 국외봉사

의 내용을 보내드렸는데, 오늘은 국내봉사의 이야기로 올며와 본다.

 

 

Campus           두근두근한 이웃집 새단장하기

캠퍼스라이프             인하대 집수리 봉사 동아리 <트인>                                  

 

열악한 주거 환경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 집을 수리해주는 에너지 넘치는 대학생들이 있다. 인하

대 집수리 봉사 동아리 트인T_in(Together INHA)! 도배 전문가도 기피한다는 곳에서 일하는 것이 고생 

스럽기도 하지만, 이들은 매달 집수리할 또 다른 집을 찾아 나선다. 즐거움 가득한 얼굴로.

 

 

 

 

^^왼쪽부터 차형일(정치외교학과 3학년) 강혜지(경영학과 3학년) 배형진(전기공학과 2학년) 안도건(기계공학과

2학년)이들은 모두 트인 회원들이다.

 

 

독거노인, 소년소녀 가장, 장애우 등이 열악한 주거 환경으로 고통 받지 않도록 한 달에 한 번 집수리

봉사를 하고 있는 인하대 집수리 봉사 동아리 트인. 이들은 벽지 도배, 장판 교체뿐만 아니라, 전등 갈

기, 스티로폼으로 단열하기 등을 하며 집을 새 단장 시킨다.

알고 보면, 형편이 어려워 20~30년 동안 도배를 하지 못한 집이 많다. 열 평 남짓한 집에 복잡하게 놓

여 있는 갖가지 짐, 무너지기 직전인 벽과 천장, 벽면 전체에 핀 곰팡이, 벽지를 뜯으면 나오는 벌레들,

 돈을 준다고 해도 전문 도배사들 조차 일하기 싫어하는 악조건의 집을 찾아다니는 트인 회원들, 이들이

구슬땀을 흘리면서까지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집수리도 하고 물품 지원도 하고

동아리 트인의 시작은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지역사회에 도움을 주고자 모인 인하대 학생

6명이 해비타드(열악한 주거환경의 사람들이 제대로 된 집에서 살 수 있도록 돕는 운동단체)  소속 소모

임으로 첫 봉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해, 이 모임은 함께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자는 의미의 트인 T_IN

(Together INHA)이라는 이름을 붙여 동아리로 발전했다.

또한, 트인은 집고치기 사업, 물품지원 등의 활동을 하는 봉사단체인 희망브리지의 산하 대학동아리 중

제 1호다. 매달 희망브리지로부터 재래시장 상품권 100만 원을 후원받고 있는데, 매달 스므 가구를 선 

정해서 한 가구 당 필요로 하는 물품 5만 원어치를 상품권으로 구입해서 전달하고 있다. 이렇게 혼자 살

고 있는 노인들을 찾아 매달 물품 지원도 하고 외로움도 달래드리는 지속돌봄 봉사도 함께 이뤄지고 있 

다.

집수리가 필요한 집이나, 지속돌봄 봉사를 통해 물품을 지원받을 가정은 희망브리지와 업무협약이 체

결되어 있는 인천 동구청 남구청에서 지정해 준다. 그렇게 소개받은 집들을 트인 회원들이 직접 찾아가

상태를 확인한 후, 그 중에서도 가장 집수리가 시급한 집을 선정하고, 8~10명이 한 조가 되어 하루 동 

안 봉사한다.

 

 

 

 

 

힘들어도 봉사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

"실내인데도 불구하고 여름에는 매우 덥고 습하고 겨울에는 추워요. 특히 여름에는 거의 찜질방에 있는

수준이죠. 도배지에 바른 풀이 마르면 안 되기 때문에 아무리 더워도 선풍기를 켱 수 없어요. 풀 자체가

진득하니까 도배를 하면서 습기가 올라오는데 환기는 안 되고, 불쾌지수만 높아져요. 그래도 남을 돕고

자 시작한 일이기에, 힘이 들다가도 지저분했던 집이 깨끗해질 것을 생각하면 즐거워져요."

트윈회원들이 찾는 집들은 모두 봉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잇던 집들이기 때문에 하나같이 수리하기에

악조건이 많다, 하지만 트인 회원들은 비록 힘이 들더라도 누군가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이들  

을 도울 수 밖에 없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또 다른 사람들을 매달 찾아가지 않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왜냐면 집수리 봉사를 하고 돌아올 때면 계속 여운이 남아요. 제게 도움 받았던 분들이 어려운 상황이

생기면 저부터 먼저 떠올리시고, 제가 그분들을 생각하는 것보다 저를 더 많이 생각해주세요. 그래서  

다음 달에도 꼭 다시 찾아뵈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를 기다리시는 걸 아니까요. 지물포 사장님들  

  은 젊은 학생들이 좋은 일을 한다며 앞으로 풀은 공짜로 가져가라고 하셨죠. 좋은 일을 하다 보니 주변 

에서 도와주시는 좋은 분들도 많이 만나요. 

 

내면을 성장시켜주는 나눔 활동

트윈 회장 기계공학과 4학년 김기범 씨는 현재 남을 위해 하는 활동이 언젠가는 자신에게도 꼭 돌아오

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집에서는 꼼짝도 안 했던 제가 봉사 활동을 하면서 지금까지 좋은 환경에서 살아왔다는 것에 대한 감

사함과 가족과 집의 소중함을 알게 됐어요." 제가 봉사하러 간 집 주인들의 사정을 들어보면 돈도 벌고

싶고, 의지와 열정도 있는데, 사고로 몸을 다치거나 갑작스러운 사업 실패 등으로 일을 하지 못하고 계

셨어요. 그분들을 보면서 제 인생에도 언제, 어떠한 어려운 상황이 닥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요. 없는 형편이지만, 음료수도 주시고, 밥 한 번 더 대접해주려고 하며 베푸시는 그분들에게 배우기도

해요."

중국교환학생 기계공학과 2학년 지천강 씨는 유학기간 2년 동안 거의 빠지지 않고 트인 활동을 해왔다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고마워하시는 것이 자신에게 큰 기쁨이었던 것일까. 원래 평소에 말이 없는 성격

인데다 낯선 나라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얼굴이 굳어있던 그는 사람을 많이 만나면서 말수와 웃음이  

많아졌고 성격이 밝아졌다. 

 

 

^무더운 여름에도 불구하고 회원들이 협동하여 낡고 퀴퀴한 집들을 보수하는데 여념없다.

 

이렇게 트인 회원들이 일부러 자신의 개인적인 시간을 내어 고생하며 봉사활동을 한다. 본인의 내면이

성장되어 가며, 내가 얼마나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한 달에 한 번 집수리 봉사와 지속 돌봄 봉사'라는 원래 정해놓은 가이드라인의 그 이상을 하고 있다.

졸업해도 집수리 봉사는 계속 된다!

  "자신의 집을 수리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기 계시기에, 한 아주머니께서는 눈물을 글썽이시

저희에게 고맙다고 하시며 한 명씩 손을 꼭 잡아 주셨어요. 그렇 때면 우리가 봉사하길 정말 잘했다

는 걸 느껴요.  도움이 필요하신 또 다른 분들을 찾게 되죠."

이제 이들에게 봉사활동은 뗄 래야 뗄 수 없는 삶의 한 부분이 됐으며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 되었다.

그래서 트인 졸업생들은 취업을 한 후에도 '빌드 업'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집수리 활동에 

참여하며, 개인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있다.

앞으로 집수리뿐만 아니라, 오래되고 낡은 가구도 교체해주기 위해 공방에서 가구 만드는 법을 직접

    배우려고 한단다. 아무리 우리나라 사회가 냉랭해졌다고 하지만, 서로 돕고 도움 받으며 훈훈함을 안겨 

주는 그들에게서 이 세상에 아직 남아있는 온기를 느낀다.

 

 

일러스트 ㅣ 김진복

 

 

국내에서는 온종의 마음을 국외에서는 온정과 국위선양을.....

일부러 나타내기 위한 것이 아닌 진정 아름다운 마음을 보여주는 봉사하는 우리 학생들에게 다시

한번 마음의 박수를 보내며 글을 마침니다.    감사합니다.

 

 

마음의 세계를 들여다 보는 시간입니다.

4편 : 고통스러워하는 마음

세번째 시간 후편입니다.

 

지난 시간엔 기성이가 교도관에게 복수 하기로 마음을 먹은 부분까지 이야기를

드렸습니다. 죄수가 교도관에게 복수를 한다는 말도 않돼는 생각을 갖게 된 기

성이의 마음이 어떤지 이어 가도록 하겠습니다.

 

복수하기로 마음 먹은 다음부터 장작불을 때는 일을 하면서 장작을 정리하는 커다란

쇠꼬챙이를 불에 벌겋게 달군 다음 손가락 길이만큼 끊었습니다. 그리고 틈이 날 때마다

그것을 갈아 날카로운 칼을 만든 다음 기회를 노렸습니다. 어느 날 교도소 복도에서 그  

교도관의 목에 칼을 대고 말했습니다.

"나, 이세상에서 대접도 못 받고 이제 살기 싫다. 그만 저 세상으로 가고 싶은데

혼자 가기는 너무 외로우니까 같이가자."

교도관이 벌벌 떨었습니다. 교도관을 끌고 독방으로 밀고 들어가

"교도소장 빨리 오라고 해! 법무부장관도 오라고 해! 안 그러면 이 사람은 죽어!"

  하고 소리쳤습니다. 교도소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어떻게 해야 교도관을 구할 수 있을

  지 회의한 끝에, 전봇대 굵기의 기둥으로 독방 뒷 벽을 치기로 했습니다. 곧 서른 명이

 나무를 어깨에 메고 뒷 벽을 세게 치자 벽이 무너지면서 그와 교도관이 더미에 깔려  

 기절했습니다.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얼마나 맞았는지 몸을 가눌 수 없었습니

다. 그 후로는 교도소에서 아무도 그를 괴롭히지 않았습니다.

'이것들이 이제 사람 대접 좀 해주는구나. 세상 이렇게 살아야지!'

그는 항상 이런 식으로 살았습니다. 재소자들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른 교도소로

 이송되는데, 그곳에서 자기를 몰라주면 또 교도관을 납치해서 인질극을 벌렸습니다.

형량이 점점 늘어났습니다. 그래도 그는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감옥살이가 길어질수록 그의 건강이 나빠졌고 급성간염에 걸려 스러졌습니다.

교도소 의무관은 심신 안정이 우선이라고 했지만, 그는 속이 활화산처럼 부글부글

 끓고 있어서 안정이 될 수 없었습니다. 다리도 펼 수 없는 작은 방에서 혼자 벽을보

고 욕하고, 웃고, 울면서 분노를 토해 냈습니다.

어느 순간, 자신이 정신병에 걸려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건강 만큼은

자신 있었는데, 몸도 병이 드니까 싸우고 싶어도 싸울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긴  

고통의 터널을 지나는 자신의 삶이 처음으로 너무 싫고 두려웠습니다. 고통이 밀 

려왔습니다. 보통 제소자들이라면 견뎌내지 못했을 육체적 고통을 무수히 당하면

서도 그가 느끼지 못했던 또 다른 고통이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스물셋에 교도소에 들어와 젊은 날을 고스란히 감방 

에서 보내야 하는 자신의 신세가 한스러웠습니다. 혼자 외롭게 있는 것이 괴로  

웠습니다. '마음을 나눌 사람이 있다면, 대화할 상대가 한 사람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족들이 떠 오르고, 부모님께 효도 한 번 못하고 죽는다고 생각하니 그것 또한

몹시 가슴 아팠습니다. 전에는 그런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면회도 안 되 

는, 독방에서 쓸쓸히 생을 마쳐야 한다는 것도 괴로웠습니다.

교도소에서 사형 집행이 있던 날이었습니다. 한 사형수가 처절하게 발악하며

끌려가는데, 전날까지만 해도 담배꽁초 하나로 싸우고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돌아다니던 그 사형수 였습니다. 꼭 자기 모습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저렇게 가고 말 것을 내가 왜 그렇게 살았지?"

그는 지난 삶을 돌이키고 새 삶을 찾고 싶어졌습니다. 그리고 얼마후, 그의 생각

에 큰 변화가 일어났고 지금은 형을 다 마치고 출감해서 이전과 다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오늘의 마인드는 여기에서 마침니다.

 

**생각 하나 그것에 ㅇ끌림을 받는 순간 인생이 변화 합니다. 어떤 생각은 자신

파괴하고, 어던 생각은 자신의 삶을 복되게 합니다. 어떤 생각을 따르느냐 하는

것은 지혜로움이 정합니다.

내 생각을 버리고 지혜로운 인도자의 말에 귀를 열면 아름다운 삶이 열리게 될 

줄 믿기에 감히 이 글을 올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