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옥수 마인드칼럼] 삶속에서 어려움을 감내할 수 있다면 2
안녕하십니까 [박옥수 마인드칼럼] 삶속에서 어려움을 감내할 수 있다면 2번째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지난 회에서는 어려운 일에 하나하나 맞서는 동안 문제가 해결되어 복으로 바뀌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고, 작은 일에도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의 자세를 배울 수 있었다는 말씀을 했습니다.
그로 인해 한 번도 어려움이 그냥 어려움으로만 끝난 적은 없었다는 말씀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이제 두 번째 이야기를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어떤 목회자들은 작은 어려움이나 시련이 와도 부담스럽게 여겨 피해 버리곤
합니다. 자기 신변을 지키는데 급급한 나머지 주님 앞에서 어려움을 당하는데 인색한 것입니다.
당장은 부담이 없고 편할지 모르지만, 마음에서 하나님의 보호와 도움을 경험하지 못하면 목회를
해도 힘을 잃게됩니다.
저는 전도사로 목회를 하다가 1965년 군에 입대했습니다. 그런데 훈련병들은 대부분 훈련소 밥을
잘 먹지 못했습니다. 훈련소에서 주는 밥이 아주 험했기 때문에 어떤 훈련병은 일주일 동안 PX에
서 빵을 사 먹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훈련소 생활이 아주 편하고 행복했습니다. 입대하기 전,
너무 춥고 배고프게 살았기 때문입니다. 양식이 없어 굶을 때가 수두룩했고, 추운 방에 이불이 없
어 찬송가 괘도를 덥고 잔 적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군대에서는 하루 세 끼 밥이 꼬박꼬박 나올 뿐
아니라, 따뜻한 내무반에서 지낼 수 있었습니다.
훈련소에서 시초군사훈련을 마치고 강원도 원주의 1군 사령부 통신훈련소로 자대배치를 받았습
니다. 통신훈련소에는 통신 교육을 받으러 오는 교육생 병사들이 많았는데, 군생활이 힘들다 보
니 병사들의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했습니다. 틈만 나면 고향 생각, 여자친구 생각을 하다 탈영하
는 병사들도 있었습니다.
군종병이었던 저는 그런 병사들을 위해 집화를 열어 성경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습니다. 제가 믿는
예수님을 그들도 믿고 힘있게 군생활을 해 나가길 바랐습니다. 그래서 중대장님을 찾아갔습니다.
"중대장님, 부대에서 집회를 하려고 합니다."
"집회가 뭔가?"
"병사들을 위해 일주일 동안 외부강사를 불러다 성경이야기를 해 주는 행사입니다."
"어디서 할 계확인가?"
"예, 병사식당에 1천 명 정도 모일 수 있습니다."
"그래, 그럼 강사님은 어디서 주무시고 식사는 어떻게 대접할 생각인가?"
"잠은 예배당에 목침대 놓고 저랑 자고, 식사는 병사들이 먹는 밥을 타다 같이 먹으면 됩니다."
"뭐? 중대장이 체면이 잇지..., 강사님을 어떻게 목침대에서 주무시고, 군대밥을 드시게 하냐?"
"괜찮습니다. 그분은 저렁 잘 아는 사이니까, 저랑 같은 밥 먹고 같은 데서 자도 즐거워할 겁니다."
"그분은 괜찮아도 난 안 돼, 정 집회하려거든 숙소랑 식사 문제부터 해결해, 못하겠거든 하지 마."
중대장님께 거절을 당하니 막막했습니다. 그렇다고 부대 밖에 따로 숙소를 준비할 형편도 못 되
었습니다.며칠동안 생각을 하다가 1군사령부 군종참모부의 행정실장 김소령님을 찾아갔습니다.
사정을 들으신 김소 령님은 중대장님에게 전화를 해 주셨고, 중대장님도
" 그럼 주무실때 모포라도 깨끗한 것을 드리고, 병사식을 드시더라도 PX에 가서 반찬을 좀 사다드려라"
며 허락하셨습니다.
처음 '부대에서 집회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성경이야기를 듣고 마음에 힘을 얻을 장
병들을 생각하니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막막하고 어려웠습니다. '집회를 어디서 하지? 그리고 강사
숙소랑 식사는 어떻게 준비하지?' 그런데 막상 부딪혀 보니 문제들이 하나하나 풀리는 것을 경험할
수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군종병인 내가 부대에서 무슨 일을 하기를 기뻐하실까?'를 생각하니 할일이 너무너무
많았습니다. 물론 어려움도 있었지만 그 마음을 따라 하나둘 일을 하다보니 어려움 뒤에는 기쁨이
찾아왔고 제 마음도 담대해 졌습니다.
'그래 좀 힘들면 어때? 욕좀 먹으면 어때? 하나님이 보고 계신데, 그리고 내가 전한 성경 이야기를
들은 저 사람이 저렇게 행복해 하는데,'
그렇게 보낸 제 군생활이 어찌나 행복했는지 지금도 군대 가라면 다시 갈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유명한 사업가들도 회사를 경영하며 늘 좋은 일, 부담 없는 일만 겪는 것은 아닙니다. 사업자금
이 부족해 문제가 생기고, 대출을 받으러 은행에 가서 사정을 할 때도 있고, 심지어 은행에서 돈을
못 빌려 사채를 쓰기도 합니다. 직원은 부족한데 할 일은 많아 밤을 새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
일들을 경험하며 회사를 경영하는 법, 일을 계획하고 추진하는 법 등을 배우는 것입니다.하지만
부담스럽다고 어려움을 피하기만 하면 성장하거나 발전할 기회를 잃어버리고, 10년, 20년이 지나도
전혀 변화를 경험할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언젠가 현대그룹의 창업주인 고 정주영 회장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정회장은
6,25전쟁을 전 후로 건설업을 하면서 현대그룹을 일으켯는데, 6,25전쟁 직후 그가 정부로 부터수주
받은 일이 바로 낙동강의 고령교 복구 공사였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장비도 없이 인력만으로 다
리를 복구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낙동강의 물살이 어찌나 빨랐던지, 죽어라 고
생해서 교각橋脚을 세워 놓아도 금방 떠내려가 버리기 일쑤였습니다.
'도저히 못 하겠다'며 도망가려는 직원들을 다독여가며 그는 공사를 게속 했습니다. 정주영이
정부로 터 받기로 한 계약금은 5,478만 환이었지만, 근 2년간 갖은 고생 끝에 공사를 마치고 나니
6,500만 환이나 되는 적자가 났습니다.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와서 비서에게 '집으로 가자'고 했
더니 전혀 모르는 곳으로 그를 안내했습니다. 공사대금을 마련하기 위해 살던 집을 팔았던 것입니
다. 조그마한 판잣집에 살고 있는 가족들을 부둥켜안고 그는 한바탕 통곡을 했습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신용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공사를 마무리한 정주영을 잔부 공무원들이 달
리 보기 시작했습니다.
'정주영 저 사람은 손해를 보더라도 맡은 일은 어떻게든 마무리 한다'는 평판이 퍼졌고,사람들은 너
도 나도 정주영에게 일을 맡겨 현대그룹이 크게 성장했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여끼까지만 하겠습니다. 다음 시간 까지 안녕히 게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