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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처럼, 내 인생도 삭제가 될까

epika2 2021. 3. 18.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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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처럼 내 인생도 삭제가 될까

 

해외 봉사를  떠나기 전,  제 삶은 마치 이곳 저곳이 고장난  불량품 같았습니다.  체중이

120kg가 넘었고, 허리 압박골절과 높은 간 수치를 걱정해야 할 만큼 건강이 좋지 않았습

니다. 제가 보기에 전 정상인과는 거리가 멀어보였어요.                                          

 

어린 시절, 저희 부모님은 매일 술에 취해 계셨어요. 그러다 두 분이 크게 다투실 때면 저

를 때리며 다 같이 죽자고 하셨죠.  그 모습은 제게  무척 고통스러운 마음의 상처가 되었

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엇어요.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저 자

신뿐이라고 생각했죠.  어떻게든 잘살아 보려고 많은 목표와 계획을 세웠지만,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습니다. 실패의 아픔을 잊기 위해 게임과 술에  빠져 살았고, 제 머릿속은 어

떻게든 돈을 더 가져보려는 생각으로 가득했어요.                                                 

 

그런 제 삶이 싫었고, 하루하루가 비참했습니다. 어느 날부턴가는 '아, 내 인생은 망햇는데

새 삶을 살고 싶다'라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게임을 하다 보면  한번씩 제 케릭터가 망

하고 다시  만들고 싶었어요.  저는 새 삶을 살기 위해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에  지원했고,

아프리카 르완다로 떠났습니다.                                                                         

 

르완다는 '천개의 언덕'이라는 별명이 있을 만큼  초록빛의  대자연 속에 수많은 언덕들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곳의 자연은 아름다웠지만, 너무나 낮선 르완다에서의 삶은 적응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저는 결국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지부장님을 찾아 갔습니다. 그때 지부장님은 저에게 이렇

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선택을 해야 해, 일 년 동안 게속해서 어려움을 피하면서 지낼 건지, 아니면 새로운

삶을 만들어 볼 것인지,  소망을 선택한다면 이곳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어,  내가 도와줄

게, 효섭아."                                                                                                  

지부장님의 말씀은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던 제 생각의 전환점이 되었고, 르완다에

서 봉사활동을 계속할 수 있는 힘이 되었습니다. 저는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을 선택했어요.

 

한번은 'IPPC'라는 대학교에서 코리아 캠프를 한 적이 있습니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

준비 했어요. 하지만 캠프 전날까지 접수 인원은 저조하기만 했습니다. 저는 이런 상황을

보며  '이 캠프는 할 수 없겠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지부장님도, 동료 단원들도

그 누구도 포기하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저도 포기하지 않고 부딪쳐보기로 했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사람들이 점차 무집되는 것을 볼 수 이었습니다. 내가 볼 때 불가능해 보였는

데, 마음을 바꾸니 성공적인 캠프가 되었습니다.                                                    

저는 부담스러운 일을 마주할 때면,  지부장님이 제게  해주셨던 그 한마디를 생각했습니

다. 그 말은 제 자전거에 발을 올려  놓을 힘을 주었고, 그  덕분에 저는 앞으로 달려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바쁘고도 행복한 생활을 하며 제 몸에도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는데요.  살이 무려

40kg이 넘게 빠지면서 허리 통증이 줄었고 간 수치까지 모두 다 좋아지면서 무척 건강해

졌습니다.                                                                                                    

 

실패나 어려움을 만날 때면 늘 피하기 바빳던 저였지만, 르완다에서 도전할 수 있는 힘을

얻었고 앞으로 나아가는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르완다는 짙은 어두움만 계속될 것 같았던

제 삶을 밝게 비추어주었습니다.                                                                        

 

글 심효섭 (르완다 헤외 봉사단원)                                                          

 

몰랐다 이토록 가까이에 있는지                                              

 

카이스트 대학에 입학한 후  첫 학기를 마치며  처음으로  '노력하면 무조건 된다.'라는 말

이 틀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보다 뛰어난 친구들이 너무 많았거든요, 학교

선배는 제게  일반고 출신이면 학점 3,3도 못받는다고 하더군요. 고교 때는 좋은 대학에들

어가려고 열심히 공부했는데, 막상 대학에 오고 나니 뚜렷한 목표도 사라졌습니다.그런 제

모습을 보며 허무와 공허를 느끼며 지쳐갔습니다.                                                   

 

잠시라도 쉬고 싶었던 저는 1학년을 마치고  곧바로 아프리카 에스와티니로 해외 봉사를

떠났습니다. 그곳에서 정말 다양한 활동을 했는데요,  한 번은 마을 주민들을 위한 캠프를

하기위해 산골짜기에  있는 작은 마을로 갔습니다. 그곳은 무척 더웠고, 전기는 물론 물도

부족해 빗물을 저장하여 생수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생활이 너무  불편했고, 온갖 불평

불만이 계속 올라왔습니다.                                                                               

 

그러던 도중에 '릴리스와'라는 한 친구를 만나 이야기하게 되었어요. 그 친구가 저에게 이

곳에 와줘서 너무 기쁘다며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친구가 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하다

고 하더라고요. 행복하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 그 친구가  신기했어요. 그래서 그 친구

에게  "나는 한국에서 행복한 적이 없었어, 진짜 행복한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친구가 웃으며  말했어요. "내가 살아온 환경은 모든 것이 부족했어, 그래서 한

끼 먹는 것이 행복하고, 비가 오는 것도 정말 감사해, 나는 나처럼 어려운 환경에 처한 학

생들을 위해 선생님이 되고 싶어,  내가 꿈을 이룰 생각을 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니

정말 행복하고 기뻐."                                                                                      

 

그 말에 저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제 모습이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밥

을 마음껏 먹을 수 있고 수도꼭지를  돌리면 따뜻한  물이 바로 나오는 것. 친구와 가족이

있다는 것, 이 모든 조건이 누군가에게는 이토록  감사해하고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이었는

데, 그걸 보지 못해서 불행하게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에스와티니는, 제게 행복이 얼마나 가까이에 있는지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세계 최고의 공학자가 되겠다는 '꿈"도 선물해 주었습니다. 에스와티니에

서 보낸 1년은 제 인생 최고의 보물로 기억될 것입니다.                                           

 

글 박병지 (에스와티니 해외 봉사단원)